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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환 Feb 19. 2021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임세환감사님, 뭐 좀 여쭤볼께 있는데요"

"어, 뭐..."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인데 아빠가 가야 할까요?"

후배 평가사가 물어봅니다. 이번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든요. 반차를 내서 갔다와야 할지 고민이었나 봅니다. 


저는 첫째 서현이의 입학식에 다녀왔어요. 아내가 아빠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해서 다녀왔는데 시간이 지나고 사진을 보니 므흣했습니다. 서현이가 이제 4학년이 됩니다. 둘째 재현이는 작년 코로나로 입학식 자체가 없었는데요. 너무 아쉬었습니다.

2018년 딸아이 입학식에서 아내가 찍어주었습니다.


"반차 내고 다녀와. 아빠들이 많이 안 오긴해. 그런데말이야. 나중에 아들이 네 나이쯤 되었을 때 아빠와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떨까? 스무살때는 모를꺼야. 친구들하고 놀기 바쁘니 말이야. 서른살때도 모를꺼야. 취업에 공부에 바빠서 말이야. 근데 네 아이가 아빠가 되고 나면 알겠지. 우리 아빠가 내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오셨구나. 이 사진속에 젊은 사람이 아빠구나 하고 말이야."

"네..감사합니다."


"내가 3년전에 쓴 글이 있는데 한번 볼래? 국민은행광고 보고 어버이날 즈음에 쓴 글인데 너도 보면 알게 될꺼야" 

"아...네 감사합니다"


아래글은 3년전 어버이 날 즈음에 쓴 글입니다. 

오늘은 제게도 특별한 날입니다. 아버지와 오롯이 하루밤을 같이 하게 되는데요. 몇십년만에 이렇게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단둘이만 같이 밤을 보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찍 주무시겠지만 이야기도 하겠죠. 오늘 밤이 기대됩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차에 핸드폰에 ,책상위에, 지갑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적이 언제인가요?

네가지 질문에 뿌듯했습니다. 네가지 질문 자체도 행복이었으니까요. 내 두녀석들이 뭘 좋아하지는 지 손꼽아보았고 어제 너무 늦어서 자는 모습을 못보았지만 괜히 미안했습니다. 아이 사진이 몇장이냐는 물음엔 셀수도 없이 있는 아이사진을 세어볼까도 생각했구요. 매일밤 같이 잠자리에 누울때 하는 마지막말 " 잘자, 사랑해, 좋은꿈궈, 뽀뽀"를 떠올렸습니다.


이 자리에 "아버지"를 넣어봅니다.

감사합니다.


몇년전 국민은행의 기업이미지광고였습니다.

재작년 이 광고를 처음보고 엄청 울었습니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라 갑자기 이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글로 나의 기억을, 나의 생각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저도 저 영상의 다른 젊은 아빠들처럼 "아기"의 자리에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먹먹했습니다.

지금도 이 영상을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다시 또 먹먹해집니다.

아버지는 올해 칠순입니다. 정월 여번쨰날이 그날인데 그날 우리집은 칠순잔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이어서요. 조용히 보내고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여동생과 저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워낙 고집이 있으시고 겉치례 등을 싫어하십니다.


아버지의 서울살이는 경북의성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1979년 여름. 아버지의 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치료와 수술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동분서주하였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와 친척은 야반도주하여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의 실망으로 아버지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쉽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진정한 친구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손을 놓치않고 나를 당겨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어릴적부터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무튼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나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일하기로 합니다.

서울로 상경하여 배운 가방쟁이의 길, 원단을 재단하고 미싱을 돌리고 본드칠을 하여 잇고 장신구를 달고 제품을 포장하여 남대문시장에 납품하는 일이 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워낙 부지런하시고 손재주가 뛰어나 당신의 소중한 가방은 시장에서 고정적으로 찾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불량이 없는 완벽 그 자체였으니까요.(가방을 만드는 와중에 아버지의 완벽주의는 대충대충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불량률 제로. 가방경기가 별로였을때에는 <일본의 잡지책 >쪼가리와 샘플만 있으면 이리저리 재단하고 연구하여 똑같이 가방을 만들어 낼 정도로 아버지는 뛰어난 가방쟁이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휴일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양, 그 양을 매일 만들어야 했고 주문은 계속 밀려왔습니다. 주문이 밀려있다고하여 하루에 20내지 30개를 100개로 늘릴 수가 없습니다. 단 두분이서만 가방의 A에서 Z까지 모든 것을 다 하는 공정이라 욕심을 낸다고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얼마전 8살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가서 아이의 입학을 축하하고 사진도 찍고 맛난 음식으로 자축도 하고 그랬었지여.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중학교,고등학교, 대학교 입학과 졸업의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엄마만 있었고요. 아버지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늘 공장인 집에 계셨지요. 사실 엄마가 잠시 오시는 것도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바깥 외출의 시간은 그 날 밤의 잠을 줄여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어릴적 아버지는 새벽 4시,5시부터 시작하여 재단을 하고 미싱을 돌리고 본드칠을 하고 수선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일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치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 재단하는 칼은 여러번 상처를 주었고 미싱바늘 또한 여러번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노동으로, 엄마의 노동으로 우리 남매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이제는 각각 두아이들의 엄마의 자리, 아빠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지난주 6살 제 아들은 태권도도장을 처음으로 갔습니다. 그것을 기념하여려고 사진으로 남겼놓았습니다. 노란색 도복에 흰 띠, "태권태권" 주먹지르기를 배워와서 아빠엄마에게 보여주는 재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었지요.


지금은 빨간띠입니다.


1982년 국민학교 2학년부터 저도 태권도장을 다녔습니다. 아버지도 조그만한 당신의 아들이 주먹지르기며 발차기를 하는 게 므흣했겠지여. 그래서 집앞  골목에서 사진을 찍어주셨었습니다.

1983년 3학년 어느날인가봅니다. 사진속 아버지의 그림자만 남아있습니다.


어릴적 매달 첫째(?) 월요일(긴가민가합니다)에는 아버지와 늘 목욕탕에 갔습니다. 그날 목욕탕의 첫 손님은 항상 저희 부자였습니다. 탕에 물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저희 부자는 목욕탕에 들어섰고요. 아버지의 등을, 나의 등을 서로 밀어주며 한쪽 벽면에 붙어있던 <물부족국가, 30분 건강목욕>의 그림처럼 정말 필요한 물만 쓰고 후다닥 나왔었지요. 옆에 같이 목요을 하던 다른 할아버지와 아저씨들은 늘 같은 요일에 오는 저 부지런쟁이 부자를 부러워하셨었지요.



아버지의 아들은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아버지의 아들의 아들을 낳아 기릅니다.

아!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은 넘쳐나지만 표현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제 이 동영상 끝의 답을 해야겠습니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생선을 싫어하시는데..솔직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오늘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부터 만들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당신차에 핸드폰에 ,책상위에, 지갑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장이나 있나요?

(지금 아버지와 손자손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몇장 핸드폰에 넣었습니다. 저도 아버지도 쑥스러워하셔서 아이들을 동원했습니다. 가끔 아이들 찬스를 쓰겠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적이 언제인가요?

(딸과 아들을 통해서 이야기 할려고요. 안하려는 걸 하려니 저도 아버지도 급당황하실거라서요. 서현아! 할아버지 사랑해요 해야지. 뽀뽀해드리고, 재현아! 할아버지 다음에 또 올께여. 건강하세여.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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