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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Feb 19. 2024

내 손보다 더 따뜻한

2024년 2월 19일

그녀는 인터뷰가 취미라고 했다. 어쩌다 누굴 알게 되면 반드시 인터뷰를 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A4용지에 가득 출력해왔다. 질문은 그때그때 달랐다. 어떨 땐 인간 실존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 어떨 땐 좋아하는 과일의 종류 같은 산뜻한 질문, 어떨 땐 이성 관계에 관한 가벼운 질문.


“이성 이야기가 제일 무난해요. 웬만해선 호불호가 없죠.”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차가운 캐모마일을 꿀꺽 마신다. 밖은 몹시 추운데, 난방이 심해서 카페는 꽤 덥다. 외투를 벗어 옆에 내려놓는다. 그녀는 가방에서 질문지를 꺼낸다. 

어떤 질문일까?

실제로 매번 다른 질문을 하는지, 아니면 항상 같은 질문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두 번 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지금 인터뷰가 두 번째 만남이다.

“보통 스타벅스 쿠폰을 줘요. 공짜로 해달라고 하긴 좀 미안해서요.”

“그정도면 다들 만족하나요?”

“그런 거 안받고도 하고 싶어하죠. 다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해요. 요즘은 들어주는 사람이 참 없거든요.”

“그런가요.”

“그럼요.”

그녀는 내게 질문지를 건넨다. 질문은 총 스물 일곱개다. 왜 하필 스물 일곱개일까? 나는 전체 질문을 쭉 훑는다. 마지막 질문은 이런 거였다.

27. 이성과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 스킨십이 가능한지?

나는 질문지를 내려놓는다. 그녀는 펜과 수첩을 꺼낸다.

“대답하고 싶은 질문만 대답하면 돼요. 굳이 다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

“알겠어요.”


우리는 스물 여섯가지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연애를 얼마나 해봤는지,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지, 연애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무엇인지 같은 뻔한 질문들이다. 연애는 다섯 번 정도, 이상형은 통찰력이 있는 사람, 연애를 통해 얻고 싶은 건 재미와 안정감... 나의 대답도 지루하고 시시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척 흥미롭다는 듯 열심히 들어준다. 타인을 배려하는 게 습관같다.


전시 모임에서도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배려했다. 후기를 나누는 동안 말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질문을 해서 대화로 이끌어 냈고, 누가 너무 과한 의견을 내면 에둘러서 부드럽게 만들어줬다. 덕분에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았고 나도 마음이 편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지하철에서 대화를 좀 나눴다. 그때 인터뷰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궁금하기도 해서 좋다고 했다.


질문에 관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갔다. 그녀는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더 깊은 질문을 하기도 하고, 깔깔 대며 웃기도 했다. 나 역시 대화가 즐거워 계속 웃었다. 카페는 계속 더웠다. 

“음, 벌써 마지막이네요.”

“그러네요.”

나는 질문지를 본다. 이성과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 스킨십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기가 싫다. 이유는... 글쎄? 왜일까? 어쩌면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탓인지 모른다.

“이성과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 스킨십이 가능한가요?”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나는 잠깐 생각해본 뒤에 대답한다.

“스킨십이... 어디까지인가요?”

말하고 나서 곧바로 후회한다. 최악의 대답이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녀는 웃으며 대답한다.

“딱히 정해진 건 없죠. 그것도 얘기해줘도 되구요.”

“음.”

짧은 순간,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손은 잡을 수 있어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그 이상은 안되구요?”

긴장해서 목이 마른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다른 소릴 한다.

“손을 잡으면 뭔가 느낌이 오거든요. 불확실하고 애매한 감정이 분명해져요. 참 신기하죠? 특별한 행위도 아닌데. 그냥 피부와 피부가 닿는 것뿐인데. 매일 손으로 얼마나 많은 걸 만져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별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손을 잡아보면,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져요.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더이상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문다. 그녀는 뭔가 더 나올 말이 있을 것 같아 궁금해한다.

“...무언가? 뭐? 어떤 거요?”

나는 가만히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내 눈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손바닥을 위로 향한채 쓱 내민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잡아볼래요?”

내 질문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는다.

“왜요?”

“잡아보면 알죠.”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내 손 위에 손을 얹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는다. 따뜻하고, 땀이 좀 있어 축축하다. 악수를 하는 것처럼 몇 번 위아래로 흔든다. 그리고 잠시 잡고 있는다. 온기를 충분히 느껴본다.

잠시 후, 그녀는 손을 슬쩍 빼낸다. 

“뭐가 느껴졌나요?” 하고 그녀가 묻는다.

“그럼요.”

“뭔데요?”

나는 그녀와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귀지 않아도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고 나서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절대 못 사귀겠다?”

“네?” 그녀는 조금 놀라서 묻는다. “왜요?”

“그냥, 손을 잡아보니까 그런 게 느껴지네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나참.”

나도 따라 웃는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발끈 화를 낸다.

“왜 웃어요?”

“웃기니까 웃죠.”

“웃지마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진짜 바보 같아.”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십 분 정도 뒤에 헤어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핸드폰을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스타벅스 쿠폰이 온다. 뒤이어 메시지가 몇 개 연달아 온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는다.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그녀의 메시지 알림이 상단에 계속 떠 있다.

달리 볼 것도 없으면서 이 어플, 저 어플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한다.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유튜브를 켰다가 껐다가,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말다가... 덕분에 핸드폰이 뜨거워진다. 계속 뜨거워진다. 핸드폰은 내 손보다 더 따뜻하다. 나는 그게 참 슬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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