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Sep 04. 2024

초록 패딩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모텔에 있었다. 정확히는 모텔 뒷문 쪽.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진동이 울려서 핸드폰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지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부딪히자마자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앳된 얼굴의 덩치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되었을까 싶은 남자. 바가지 머리, 오른쪽 귀에는 세 개의 피어싱이 애벌레처럼 붙어있고, 외투가 유난스러웠다. 초록 패딩 가슴팍에 두꺼운 흰색 폰트로 곰표라고 적혀 있었다. 녀석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시선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뭐라도 한마디 할 줄 알았다.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말, 그러니까 욕설이라든지... 그러나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쓱 지나쳐 모텔에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욱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얼른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편의점은 모텔 뒷문 앞에 있었다. 점원은 몹시 마르고 화장이 짙은 여자였는데, 핸드폰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부를 몇바퀴 돌았지만 물건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카운터 앞이나 뒤에 있을 것이다. 눈치를 살피다가 점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콘돔이 어디 있죠?” 

여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네?” 

“콘돔...” 

여자는 오른쪽 귀에서 에어팟을 꺼내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황급히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종종걸음으로 모텔에 돌아가는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격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례한 남자 탓인지, 자꾸만 되묻는 여자 탓인지, 콘돔을 사지 못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모든 게 그저 아내 탓인지.

방으로 돌아오니 희연은 침대에서 졸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하품을 했다. 나는 무기력하게 말했다. 

“없네.” 

“뭐가?” 

“콘돔.” 

“아.” 

그러나 그녀의 아, 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러면 나랑 뭘 하고 싶은 걸까?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나를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첫사랑이라서? 그럴리는 없다. 지금 우리는 첫사랑 같은 것으로부터 무척 먼 곳에 와 있다.

“어떤 애랑 부딪혔는데 이상한 옷을 입고 있더라.” 

설명을 듣더니 희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요새 그런 식으로 굿즈 만들어서 홍보하는 데가 많아. 곰표 굿즈 꽤 잘 나가는데 처음 봤어?” 

“그래도 좀 과하지 않나. 외투인데.” 

“늙은이 같은 소리 하기는.”

희연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남의 마음을 추측해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요란스러운 패딩을 입은 남자의 마음을 상상해보았다. 남자는 그런 옷을 입음으로써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식이 도리어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증거가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흔해빠진 일이다. 세상엔 타인을 몹시 신경쓰면서도,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떠드는 동안 희연은 누워서 듣기만 했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핸드폰으로는 계속 뭘 썼다. 누군가와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모처럼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지만 지잉- 하고 진동이 울리자 곧장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남편이야?” 

“아니.”

“누군데?”

희연은 핸드폰을 감추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상대가 기분 나쁠 말을 자제하려는 의지였다. 당연하게도 그런 태도가 빠르게 의도를 전달했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멍청히 앉아있다가 문득 밖에서 휴대전화 진동을 느꼈던 게 떠올랐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아내가 죽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글자의 조합이 의미하는 바를 가늠했다.

잠시 후, 희연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살갑게 말을 걸었다.

“내가 너무 틱틱거렸지? 미안해.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싸우지 말고 기분 좋게 보내자. 응? 응?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죽었대.”

“누가?”

“와이프.”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우리는 각자의 침묵 속에 몸을 담갔다. 깊고 더러운 저수지 같은 침묵이 명치 쪽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와, 턱을 지나, 입을 지나, 코까지 차올랐다. 마침내 나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 눈물은 아주 조금만 흘러나왔다. 그러나 스스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왔다. 오직 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울었다. 희연이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시간이 흐르고, 눈물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메아리처럼 뒤늦게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는 5년째 병실에 누워있었다. 내가 시집을 읽어주거나 튤립을 코에 들이밀어도 반응이 없었다. 무시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관심을 몹시 원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계속 말을 걸고, 사랑을 고백해도 소용없었다. 한 번은 밤중에 아내 위에 올라타 미친놈처럼 욕을 했다. 따귀도 때렸다. 그러나 발광하는 건 언제나 나 혼자였고, 내가 그만두면 세상은 금세 고요해졌다.

아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보단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기를 즐겼다.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고, 취미도 무척 다양했다. 어린 시절에 시작한 육상도 넘치는 기운을 분출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이른 나이에 코치가 됐지만 좌절하거나 우울에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수 있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녀는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감이, 말하자면 균형감이랄까, 그런 게 좋은 사람. 

아내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 직전에 쓰러졌다. 마트에서 양파를 고르던 중이었다. 큰 걸 사겠다고 자꾸 우겼던 게 기억난다.

“한 망 살래요.”

“깐 양파 2개짜리 사지?”

“한 망 살래요.”

“여보, 한 망이나 사서 뭐하려고?”

“남편 먹이려구요. 양파 튀김, 양파 전, 양파 찌개 해 먹으려구요. 양파가 피로 회복에 그렇게 좋대요.”

“남편 피로 회복 시켜서 뭐할라고?”

“잡아먹으려구요.”

아내는 돌아서서 나를 보며 양손을 오므렸다. 맹수 흉내였다. 내가 잠깐 웃는 사이, 아내는 맹수에 목을 물어뜯긴 사슴처럼 쓰러졌다. 이유는 없었다. 의사는 의식이 없을 뿐 몸은 멀쩡하다고 했다. 당장 내일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다고, 아니면 몇 달 뒤에. 몇 달 뒤에는 언젠가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팔십 퍼센트가 대출인 집에 홀로 앉아 많은 시간동안 기억을 더듬거렸다. 아내를 처음 만난 신촌역의 스타벅스와 처음 하룻밤을 보내고 들렀던 합정역 할리스를. 결혼을 약속한 강남역 스시집과 상견례를 했던 고향의 한정식집을 떠올렸다. 아내가 좋아한 세월의 돌과 노팅힐을 봤다. 아내가 좋아한 새우 크림 파스타와 잔치국수를 먹었다. 아내가 좋아한 초록색과 흰색으로 집을 꾸몄다. 언젠가 아내가 깨어나 돌아왔을 때, 말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보며 깜짝 놀라는 모습을 상상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는 아내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 상상하는 일이 지칠 때면 희연을 만났다.

아내가 쓰러진 뒤, 위로가 되는 건 오직 희연뿐이었다. 이따금 무시를 당하고, 핀잔을 듣고, 약속에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녀를 만나는 이유다. 남자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은 다 헛소리다. 나는 희연을 잊고도 10년 넘게 잘만 살았다. 아내를 만나 열렬히 사랑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그녀가 필요하다. 위로가 필요하다. 실감할 수 있는 위로. 그게 첫사랑이든 막사랑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희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내 등을,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5년 만에 아내가 죽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내를 떠나보내는 일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수습을 해야 한다. 병원에 가야 한다. 가면서 부모님과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야지. 그리고? 대체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괜찮을 거야.”

희연은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줬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아주 깊은 동굴 속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물소리 같았다.

“다 괜찮아.”

희연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별 것도 아닌, 얕은 한 번의 숨일 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복잡한 머릿속이 단번에 비워졌다. 아내의 죽음이나 불안, 아픔이 모두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습관처럼 그녀의 마음을 추측했다.

희연은 나를 위로하려 한다. 교양을 가진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나는 게 아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관계에서 그건 아주 큰 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가 될 입장의 차이. 생각해보면 그녀는 아내를 본 적도 없었다. 아내가 행복하게 춤추는 어여쁜 여인이든, 의식 없이 똥오줌을 싸대는 식물인간이든 상관없다. 서류상 아내가 있냐, 없냐가 중요할뿐. 그리고 이제 내겐 그게 없다.

이제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홀가분했다. 곧바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내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긍정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소름이 돋았다. 죽은 아내를 ‘그거’라고 지칭한 사실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내 마음일까 싶었다. 단순히 희연의 마음을 추측한 것뿐이잖아? 내가 아니라 희연이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럴 거라고 내가 생각했다. 생각은 현실이 아니다. 생각은 생각일뿐이다. 그런가? 생각은 생각일뿐일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내는 이제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게 남은 것은 희연뿐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녀의 마음이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우리 관계는 끝이다.

벌떡 일어나서 희연을 내려다봤다. 희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는 배를 잡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희연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장난이야?”

“장난이지, 하하하.”

“무슨 그런 장난을 쳐?”

“깜빡 속았지? 그러게 왜 자꾸 사람을 무시해.”

“이거, 정말이야?”

“바보. 맨날 당하고도 또 속네.”

희연은 벌떡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미친놈.” 나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희연에게 말하고 싶었다. 떠나지 말라고. 제발 내 곁에 있어달라고.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런 말 대신 웃음만 끝없이 나왔다. 문이 쾅 닫혔다. 그럼에도 입을 벌리고, 배를 떨면서 웃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낄낄거리며 아내를 생각했다. 그리고 희연을 생각했다. 그러자 내가 누굴 위해 울었고 누굴 위해 웃었는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무척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당연한 일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혼란한 생각 틈에서 문득, 패딩을 입은 남자가 떠올랐다. 이 모텔 어딘가에 그 남자가 있다. 초록색 패딩 하나만 걸치고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겠지. 그러면 편의점의 여자 알바가 들어온다. 남자가 묻는다. 콘돔은? 그녀가 대답한다. 여기. 그녀는 크로스백을 벗어 거꾸로 뒤집는다. 그 안에서 온갖 종류의 콘돔이 우르르 쏟아진다. 빨간 콘돔, 까만 콘돔, 파란 콘돔, 초록 콘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활짝 웃는다. 콘돔이 있으니까 괜찮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원 없이 하겠지. 나는 못 하는데. 그게 부러워서 화가 났다. 그래서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에게 미친 듯이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저 몸을 떨었다.




작가의 이전글 껍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