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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n 11. 2024

꽃구경 _ (D + 748일, D + 123일)

육아일기


 벚꽃구경을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꽃구경을 한 후에는 처가댁 식구들이랑 농막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까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9시 반쯤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준비는 쉽지 않다. 첫째는 이제 자기주장이 분명해서 우리가 씻으란다고, 입으란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안 한다고 도망 다니고 한다고 해도 조건을 단다. 소파 위에서 입겠다는 둥 아빠가 아닌 엄마가 입혀달라는 둥. 그나마 둘째는 옷만 갈아입히고 필요물품만 챙기면 되니 좀 간편하다. 


 한바탕 소동이 있긴 했지만 제시간에 집을 나섰다. 백일이 갓 넘은 둘째가 탈 유모차와 그 유모차와 결합해 첫째를 앉힐 수 있는 비장의 아이템을 챙겼다. 어른 한 명이 유모차를 밀면 아이 두 명을 챙길 수 있는, 이론적으로는 혁신적인 물건이다. 간신히 트렁크에 물건을 싣고 벚꽃을 보러 향했다. 


 유명한 명소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주변 지인이 추천한 조용한 시골길로 향했다. 처음엔 좀 둘째가 칭얼거리긴 했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내는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셀카봉을 챙겼다며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한 곳과 벚꽃 명소는 1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정도는 유모차 끌고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얼른 접어둔 유모차와 물품을 챙겼다. 디럭스 유모차에 둘째를 태우고 유모차에 그 아이템을 장착해 첫째를 앉혔다. 드디어 출발.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주차장과 인도가 경계석으로 구분되어 유모차를 밀 수 없는 상황. 할 수 없이 한참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다시 지도를 보니 이런 식으로 1km를 걸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가야지 하며 다시 유모차를 미는 찰나 그 아이템에 타 있던 첫째가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넘어졌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주차장에선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가려니 기우뚱거리고 통통 튕긴다. 아무래도 안전성이 낮아 보였다.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내와 눈이 마주친 나는 빠른 포기를 하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도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 시골길이어서 차가 바로 옆으로 지나다니는 통에 아차 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차에서 내린 지 5분도 안되어 다시 아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둘째는 울고 첫째는 짜증 내고. 그 와중에 유모차는 왜 이렇게 트렁크에 실리지 않는지. 답답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 나선 꽃놀이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아내도 허탈한 눈치다. 축 처진 분위기 속에 농막으로 향하는데 첫째가 갑자기 차에서 나오는 동요를 따라 부른다. 오밀조밀 한 입으로 열심히 따라 부르는 노래에 아내와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 꽃놀이가 대수냐. 웃으면 됐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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