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문화의 위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글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매체다. 현대에 이르러 여러 다른 매체가 생겼지만, 글만큼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진 못한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문화적 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글이 갖던 위상은 점차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이제 교과서나 설명서가 아닌 youtube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운다는 사실이 그렇다.
어떤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비주류 문화가 되어버렸고, 영화나 사진과 같이 시각적, 청각적 감각을 위주로 하는 매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엔 오감을 이용한 4D를 넘어 VR(가상현실)이 미래의 매체로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열린 과실을 인류가 소비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이러한 매체에 찬사를 보내기 전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소비하는 콘텐츠의 의미는 무엇일까?'
동영상이나 VR과 같은 매체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매체 자체의 흡입력이 강해서 콘텐츠의 의미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매체가 우리의 주도적 생각을 점령할 수 있는 위험이 커졌다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글과 독서와 같은 '비'주류 문화가 필요하다. 최신 매체에 휘둘리지 않도록 생각의 골격을 세워 가치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꼰대같은 생각이란 비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비주류로 밀려난 활자 문화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적, 기술적 리더의 상상력을 충실히 보여주는 최신 매체는 우리가 직접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한다. 단순히 소비하는 역할엔 충실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길을 걷는 개척자의 역할은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지도층은 항상 소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이 글과 책을 독점해 대중이 진리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기쁘게도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러한 독점에 무한히 자유롭다. 하지만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매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새로운 매체가 잘못된 주장을 할 때 그것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력을 기르는 데엔 활자 문화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