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수요일이었다. 복잡한 일이 많았지만, 일찍 퇴근해 회사 동료들과 수영을 했다.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울적했는데 수영을 하고 나니 한결 상쾌한 기분이었다.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 명당 2만 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게엔 사람이 많았다. 고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았고, 요즘 감성에 맞는 인테리어까지 더해지니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았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한 접시, 한 접시 전투적으로 고기를 비워가기 시작했다.
꽤 많이 먹은 것 같다. 서비스로 나온 육회 국수까지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평소 같았으면 그만 먹었을 테지만 무한리필집이니 최소한 본전은 뽑고 가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다. 고기를 한 판 더 시켜 불판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앗 뜨거!"
팔뚝이 따가워 얼른 손을 뗐다. 고기를 구우려다 화로에 데인 것이다. 쓰라린 느낌에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엄지손톱만한 상처는 곧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1도 화상 : 물집이 생긴 상태
2도 화상 : 피부가 익어서 갈색이 된 상태
3도 화상 : 숯덩이같이 된 상태로 화상의 면적이 온몸의 30%에 이르면 생명이 위험하다.
내 상처는 물집이 생겼으니 1도 화상이다. 면적이 크지 않아 괜찮을 것 같았다. 서둘러 남은 고기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 불판 위엔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노릇하게 잘 익어 육즙이 흘러나오는 고기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순간 내 팔뚝의 물집이 생각났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기와 상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깐만 닿아도 화상을 입는 화로에서 고기는 천천히 구워지고 있었다. 회사 동료들은 여전히 잘 익은 고기를 입속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갑자기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화로 위의 고기 한 점은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소에서 왔을 것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더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문득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나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는 현미경 속의 미생물의 죽음에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때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살생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생명을 존중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채식을 하더라도 식물을 죽이는 살생을 피할 수는 없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자연사한 동물이나 잘 익어 떨어진 열매만을 섭취하는 사람도 있으나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선 너무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살생은 피할 수 없으니 혀끝의 달콤한 쾌락을 좇지 말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먹는 것으로.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결심은 많이 흐릿해졌다. 한동안은 내가 세운 원칙을 지키며 살았지만, 어느새 나는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먹기는커녕 그때보다 10kg이 넘게 몸무게가 늘어났다.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채식을 해볼까?
조금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없었다. 고기를 끊는 것도 그렇지만 회사에서 유별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직장상사들이 따로 도시락을 준비해 먹거나, 회식 자리에서도 풀만 깨작거리는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다.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선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안그래도 버거운 회사생활에 또 다른 돌발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씁쓸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쉬웠다. 나만 바뀌면 되니까. 하지만 나의 경제권을 움켜쥔 조직에 속하고 나니 많은 제약이 생겼다. 개인의 자율성보단 기존 조직의 논리가 우선이었다. 그렇게 모난 생각이 다듬어지고 회사의 일원이 되어갔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에 속이 상했지만, 어느새 나는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샤워를 하는데 팔뚝이 찌릿하다. 물집이 터진 것 같다. 물기를 닦고 소독을 했다. 따갑지만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다.
별일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