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언제 할 꺼야?"
요즘 어른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대화할 주제가 없어서 물어보는 거라고 넘기곤 하지만 가끔 결혼을 왜 하는 건지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에 맴돈다.
결혼을 왜 하는 걸까?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어른들의 말을 정리해 보니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평생을 기댈 수 있는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
내 모든 것을 공유할 반려자를 맞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다. 내가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건너서 들었던 육아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물어보곤 했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돌아온 대답은 '낳아보면 알아.', '화목한 가정을 이뤄야 행복해.',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지.' 등 다양했다. 아쉽게도 속 시원한 해답을 듣지는 못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아이를 낳는 이유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는 유전자가 이기적 존재이며, 모든 생명 현상은 유전자가 안전하게 후대에 전해져 영원히 존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심지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로 표현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유전자가 낡은 생존 기계를 떠나 새로운 생존 기계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이다. 부모에게서 아직은 무력한 자식에게 은밀히 움직이는 유전자. 유전자는 생명이 태동한 먼 옛날에서부터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를 누비는 현대까지 그렇게 살아남아 왔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매력적인 이성에게 쏠리는 관심, 절벽 위에서 느끼는 극심한 공포, 아늑한 쉼터를 찾고 싶은 욕망과 같은 본능적인 영역에서만 말이다. 내가 막연히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득 허탈해진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원히 존재하는 유전자와 달리 나의 유전정보는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옅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적 영역도 유전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그의 설명엔 동의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이성의 영역에서는 하나의 인간이 유전자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딩크족을 들 수 있다. 정상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의미하는 딩크족은 인간의 신념이 본능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전형적인 예이다.
게다가 인간은 이성의 영역에서 유전자와는 다른 의미로 영원히 살 수 있다. '논어', '모나리자', '사계'와 같이 세월을 이겨내고 현대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 작품의 저자와 같이 말이다. 공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발디의 육체는 이미 오래전에 스러지고 유전자도 이미 흩어져 버렸지만 그들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작품에 오롯이 남아있다. 가끔은 욕심이 난다. 나도 그들과 같이 시간을 이겨내고 영원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과 내 생각이 담긴 작품을 남기는 것 중에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솔직히 지금은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읽었던 이 문장이 내게 묘한 기대를 하게 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품 안에 작은 우주가 생기는 일이야.'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아이를 낳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하니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