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에 대해

by 치의약사 PENBLADE


극우 혹은 극좌라 불리는 극단주의는, 원래 보수 혹은 진보와 같은 정치적 이념선상의 양극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이론적 설명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극단주의는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통 사람과 조금 다른 시냅스 회로를 가진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한 설명이지 싶다. 극도로 불안한 심리 상태의 증상과 유사한 의미?


극단주의는 유전적, 기질적인 이유나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발현된다. 자신과 다른 생각, 인종, 가치관, 환경, 국적, 성별 등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협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극단주의의 특징인데, 이런 성향은 알고보면 생존에 매우 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외부인으로부터 치명적인 병원균을 옮을 가능성, 공격 받을 가능성, 가족과 자원을 빼앗길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극단주의 성향을 갖게 되면 보통 부와 권력, 무력을 가진 강자를 추종하거나 비현실적인 이상을 맹신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는 불안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직감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생각과 행동, 주어진 조건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게될 경우 누구나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극단주의자들은 늘 불안한 상태에 있다.


폭력적인 시위자들, 살인을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 군대를 앞세워 시민들을 위협하는 독재자들처럼, 극단주의자들은 언뜻 보기엔 매우 사악한 강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약한 불안쟁이들이다. 따라서 남들이 자기만큼 심적 고통과 불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자주 불안에 시달리는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것은 정당방위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강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굳이 괴롭혀야 할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칼은 칼집에 있을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강자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칼을 빼는 순간 검객은 뭔가를 베어서라도 자신의 칼이 날카롭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칼의 힘은 벨 대상의 단단함 만큼만 인정될 뿐이다.


극단주의적 사고는 일종의 강박증세와 같아서, 머리 속에 굳어진 사고 회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싫거나 어떤 현상이 두려우면 그와 관련된 사고 회로만 뱅글뱅글 쳇바퀴처럼 돌며 활성화 된다. 밖으로 튀어나가 다른 생각의 공간으로 뇌 속 전기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 전자기기 기판 위의 전자 이동 통로를 몇 개 끊어놓아 전류가 폐쇄된 회로 안에서만 흐르는 것과 같다. 전자가 다른 회로로 퍼져나갈 수 없는 것처럼, 생각도 폐쇄적인 공간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다른 이들과 대화가 안 돼 외롭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다 우연히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비슷한 극단주의자들과 소통하게 되면 서로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고로 극단주의자들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끼리끼리 잘 뭉친다. 자기들끼리만 보는 컨텐츠를 외부에도 공유하기 위해 여기저기 나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뇌의 일부 폐쇄 영역 안에서 강박적 생각이 뺑글뺑글 도는 것처럼, 극단주의자들의 생각도 자신들의 폐쇄적 공간 안에서만 뺑글뺑글 돈다. 그래서 실은 외부에선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메시지를 내보내든 아무도 영향받지 않는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뒤늦게 영혼의 친구들 모임을 발견한 것 뿐이다.


극단주의자들은 '관리'를 할 필요는 있지만 '관심'을 줄 필요는 없다. 일본 덕에 잘살게 되었다든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 매춘부였다든지, 독립유공자는 게으르고 친일파는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든지, 남자 혹은 여자를 싸잡아 혐오하든지, 특정 지역 사람들을 욕하든지 어쩌든지 그것도 세상 누군가는 충분히 가질 법한 생각과 행동이다. 굳이 그걸 집어내서 비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상에서 극단주의자를 만나게 되면, 굳이 설득하려 할 필요가 없다. 시간 낭비다. 최대한 접촉을 피해 각자가 사는 세계로 각각 돌아가면 그만이다. 다시 부딪히지 않도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 먹기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