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대중은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앤디 워홀의 유명한 말로 우리가 '믿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앤디 워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외국 사이트에선 앤디 워홀이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고 오직 한국 사이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말이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만약 앤디 워홀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안다면 위의 말을 그가 했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앤디 워홀은 팝아트를 처음 연 사람으로, 그 당시에 전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 작품을 통해 예술가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앤디 워홀은 실크 스크린 프린트를 이용하여 위와 같은 이미지들을 작품화 시켰는데, 문제는 위 작품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이라 하면 일단 고유성, 재생산이 불가능한 이미지라는 속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는 기존의 그런 통념을 과감히 깨는데 성공했던 거다. 무엇이 먼저인지 세세하게 밝혀내기란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의 작품으로 유명해졌고, 그 후에 그의 작품들은 기존의 예술 작품에 대한 통념과 관계 없이 대단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앤디 워홀이 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서 왠지 실망감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다. 유명해지면 뭘 해도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충분히 공감하고 경험한 내용 아닌가. 사실 알고 보면 별 새로운 말도 아니다. 우리가 뻔히 아는 내용을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앤디 워홀이 했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싶다. 유명한 사람의 말에 공감 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받고 싶은 심리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나보다 좀 더 말빨이 센 사람, 인기 있는 사람,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이 하는 말들에 대해 사람들이 내 말보다 더 큰 신뢰를 보인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혹 그런 사람들의 말이 명백히 틀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도 상처를 받은 적도 있을 거다. 그래서 저 말을 앤디 워홀이 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거다. 유명한 사람의 말, 인기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이 사회에서 내가 상처받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거다, 하면서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도 늘 그랬다. 인간이란 종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보다 더 권위적이고, 유명한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한다. 원시 시대때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지 않으면 맹수나 자연 재해로부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누군가를 믿고 싶었던 성향이 오늘 날까지 남아있는 거라 본다. 분명 그 시절에 올바른 결정을 내려 많은 이들을 구한 소수의 리더가 있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 리더들은 명성을 얻게 되어 사람들의 신임을 받았을 것이다. 그 후부터는 그 검증된 리더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허나 이런 말이 오직 한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남보다 조금 더 뛰어난 사람, 조금 더 유명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고 추종하는 성향이 유독 커서가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의견이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것을 겪어왔다. 늘 더 잘나가는 사람과 비교를 당하고, 그들의 생각과 선택이 늘 옳다고 강요받아왔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옳고, 멋진 사람이 있으면 그의 생각이 옳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말이 옳다고 말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불안한 사회일수록 그렇게 조금 낫다 싶은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믿음을 주는 성향이 강해지는 법.
내 일을 똑바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내 생각과 철학을 다듬기 보다, 일단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인기를 얻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안다. 이는 개인의 양심이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두가 내면화하는 생각이다.
앤디 워홀이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그가 저 말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자체가, 우리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