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인식에 대한 한 사회심리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할수록 자기 삶에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영적 / 문화적 관점을 택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지지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폄하하는 성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후속 연구 중 하나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하게 한 실험이 있다. 이 때 평가 대상의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주었을 때보다 유대교인이라고 알려주었을때 참가자들은 좀 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헌데 평가 바로 전에 미리 자기 죽음을 인식하도록 요구받은 참가자일수록 평가 대상자가 유대인이라고 알려주었을때 더욱 심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오갈 정도로 극심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 중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같은 연구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극우 혹은 극좌의 정치 성향을 가지기 쉬운 것도 이런 관점으로 설명된다.
이는 곧 자기 보호적 심리 기제에서 비롯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자주 인지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생기는 좌절을 극복하고자 과도하게 자신의 신념을 맹신하고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심리를 강화시키게 된다는 의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에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도 두 나라 국민들이 소수 테러 단체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목숨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이해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를 공격의 대상으로 볼수록 서로 이해하는 길은 영원히 멀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다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타적 심리가 강한 이유도 우리 문화 곳곳에 과거 목숨을 위협하게 만든 역사적 잔재들이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계 유일한 공산주의 독재국가이자 매번 핵으로 불바다를 만들어버리겠다는 북한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반경 수 백키로미터 내에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을 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도 여기에 한 몫 하고 있을 거다.
어느 나라나 극우와 극좌는 있지만, 우리는 그냥 중도 보수, 중도 진보측 사람들조차 정치 얘기만 나오면 서로를 심하게 비난하는 것도 같은 견지에서 해석할 수 있겠다. 애초에 감정만 개입될 뿐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하니 뭐 건전한 정치 이야기란 이 나라에서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출산율 세계 최저, 자살율 세계 최고수준(우리 위로는 리소토, 기아나, 에스와티니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 아래엔 키리바티? 미크로네시아연방, 리투아니아, 수리나메라는 나라가..) 의 나라에서 이해와 관용, 포용적 태도란 단어는 무색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