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오래전 대학 동기들이 다녔던 대학원은 연구실마다 서로 비난과 편가르기가 무척 심한 곳이었다. 교수 사회도 정치가 심했고, 교수들끼리 대놓고 비난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지도교수가 다른 대학원생들끼리 서로 상대방 연구실을 까는 경우도 많았다. 몇몇 연구실은 연구실 내에서도 파벌이 갈려 같은 방 안의 서로 다른 파벌에 속한 원생들끼리는 말도 식사도 같이 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도교수 앞에서 서로의 연구를 하찮게 취급하며 비난과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기도 했는데..
그러나 알고보면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론 성격도 좋고 순수한 면도 많은 사람들이었다. 헌데 왜 그렇게 서로 비난하고 편가르며 싸웠을까?
인간은 집단과 조직의 문화, 시스템과 인센티브에 무척 큰 영향을 받는 존재다. 개개인의 성격이 어떻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자신의 본성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직도 연구중에 있지만, 인간의 머리 속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자기 정체성으로 내면화시키는 기전이 존재하는 것 같다.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학계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시 동기들이 진학한 대학원 학계는 원생들에 대한 교수들의 권한이 막강했다. 교수들은 원생들의 학위를 통과 시키거나 미룰 권한이 있었고, 따라서 원생들은 교수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교수가 짜놓은 경쟁 시스템에 일단 들어가면 그 시스템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능력이 대학원생들에겐 없었다. 따라서 원생들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자신이 더 먼저 지도 교수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향후 미래에 자신에게 더 이익을 줄 선배 라인에 서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교수는 연구 업적을 만들어야 승진 및 테뉴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고, 연구를 하기 위해선 외부에서 연구비를 따와야 했다. 정부나 산업계에서 주는 과제를 따는 데에 있어 교수들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연히 교수들이 받는 연구비 경쟁과 연구 업적 스트레스는 원생들에게 내려오게 되고, 원생들은 그렇게 내려 받은 스트레스를 주변 비슷한 입장의 다른 원생들을 비난하고 견제하며 풀게 된다.
학위를 마친 박사들도 포닥 지원을 할 때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필요하고, 후에 대학에 자리를 잡을 때도 지도교수나 학계 다른 인맥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때 압도적인 실적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평범한 포닥들은 결국 고만고만한 실적을 갖고 나머지는 인맥의 도움으로 각 대학 교수들의 관심을 사야 했는데..일단 교수로 자리를 잡으면 교수라는 직업에 따르는 부가적인 이익이 무척 크다. 당연히 한정된 교수 자리를 두고 포닥 간 경쟁은 더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자리는 경쟁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지곤 하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한국 사회의 많은 곳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그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편가르기와 서로에 대한 비난, 깎아내리기 및 온갖 종류의 권모술수가 난립한다. 요즘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경쟁이 치열하단다. 그렇게 평생을 경쟁, 편가르기, 비난에 시달리며 살다보니 어느새 한국 사람들 마음 속엔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장기적인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별의별 쓸데 없는 것들로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고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실은 사회 시스템의 희생자다. 평생을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주목받고 더 많이 가져야만 '생존'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강박적으로 매달려온 사회적 약자나 다름 없다. 욕심이 많은 것과 또 다르다. 누가 봐도 충분히 가졌지만 조금이라도 더 갖지 못하면 말 그대로 '생존'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겹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다. 답은 '생존을 위해' 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조금 내려놓는다 해서 정말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 속 불안이 막연히 '생존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생존 불안을 느끼기 보단 차라리 살아온대로 끊임없이 남을 공격하고 아득바득 사는 것이 더 낫다. 최소한 그렇게 사는 동안엔 생존 불안을 잊을 수 있으니까.
실제 현실에선 경쟁에서 낙오되도 생존의 위협까지 받는 일은 별로 없다. 길게 보면 결국 꾸준함과 성실성만 갖추고 있다면 뭐든 하게 되는 곳이 또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헌데 주변 모두가 생존 위협을 느끼고 있으면,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혼자 안정되어 있으면 주변의 불안한 사람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남과 다른' 사람은 일차적으로 축출해야 할 대상이 되고, 따라서 남들만큼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은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누구도 비난 받을만한 짓을 하지 않지만 각자가 불안해서 서로 비난으로 풀 수밖에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이 안타깝다. 개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엔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크다는 점, 그래서 쉽게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