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분들에게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때 단골로 나오는 대답이 있다. '그 때 두려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그 일을 할 걸' '그 때 과감히 이러저러한 선택을 할 걸' 등등.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한들, 그 분들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분들이 젊은 시절,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모든 시도와 선택들은, 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포기한 사람은. 물론 물리학에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다른 것을 포기할만큼 열정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을 거고,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었지만 그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자기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금전적 혹은 시간적 이익보다 패션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크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의 양육을 위해 꿈을 포기한 사람은, 자기 꿈보다 아이가 잘 교육 받고 훌륭히 성장하는데서 더 뿌듯함을 느꼈을테니 자기 꿈을 포기한 것 뿐이다. 생각보다 그 '꿈'이라는 것이 단어의 의미만 거창하지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을 수도 있다.
다만 노인들이 그런 말들을 하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로 그간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선택과 시도를 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경우다. 둘째로는 과거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생각보다 시원치 않은 경우다. 돈을 좇거나 아이 양육에 최선을 다했는데 돈도 자식도 신통치 않은 경우. 셋째는 포기했던 꿈의 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 경우다.
이런 경우라면, 실은 그 노인분들은 후회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분들은 그냥 그 때 그 때 가장 만족스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선택지들을 선택하고 살았을 뿐이니까. 어떤 것이 너무나 강렬하게 원하는 상태가 되면, 사람은 그걸 시도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한 가지만을 강렬히 원하는 사람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행복을 느끼기도 어려운 타입일 수 있다.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때만 강렬한 쾌감을 느끼고 나머지 시간엔 우울한 뇌를 갖고 사는 사람일 수 있다. 따라서 여러 현실적인 이유나 마음의 불안 때문에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선택을 하든 저런 선택을 하든 어차피 큰 차이 없이 평균적인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어차피 그 노인은 지금과 큰 차이 없는 행복을 느끼며 남은 인생을 보냈을 거란 의미다.
그런데 그렇게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하는 노인분들 중 젊은 사람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하는 케이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정말 하고 싶은 선택지가 있는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못한 경우' 다.
즉, 현재의 내 상황은 그 선택을 하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그것을 선택한 후 나중에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의 선택을 막고 있는 상태다.
이는 대단히 중대한 착각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내가 예측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즉, 내가 그 선택을 했을때 미래가 두렵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내가 나의 미래가 부정적인 결과로 끝날거라고 예측을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소위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된다고 했제' 하고 했제충으로서 미리 미래를 예측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들 중 누구도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했다. 그냥 이렇지 않을까 정도 수준에서 예측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몇몇이 우연히 맞았을 뿐이다. 항상 어느 시점, 어느 시대에나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따라서 통계적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그 예측이 맞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렌 버핏 역시 당시 여기저기 투자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통계적으로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은 반드시 나타났을 거라는 의미다.
코로나 이전, 그 누구도 코로나가 2020년에 나타날거라고 예측 못했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렇게 세상이 달라질거라고는 역시 누구도 예측 못했다. 다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지수를 예측하고 있고, 그런 예측 중 몇 가지가 앞으로 우연히 맞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은 운에 불과하다. 그게 운이 아니려면 그 사람은 지속적으로 미래를 맞춰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단지 자기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조차 실은 운때가 맞아 성공한 케이스일 거다.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고 있는 시대다. 8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 대한민국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노인들 중 우리나라가 이 정도까지 발전할 거라 예측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작년 재작년에 AI가 등장하는 바람에 이제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어 버렸다. 일 년 일 년 세상이 무척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도는 앞으로도 가속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을 예측하고 나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걸 예측할 수 있을 정도면 세기에 한 두 번 태어날 수 있는 예언자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 예언자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을까?
안정적인 길을 포기해야 하냐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 역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어떤 길을 가면 그 길의 미래가 안정적으로 보장될 거라고 스스로 예측을 해버린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의료인, 대기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도 안정적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그냥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더 중요한 건, 정말로 미래가 보장된 안정적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인생 살다가 전혀 예기치 못한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그 길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엔 어느 순간 찾아온 인생의 현타 때문에 스스로 그 길을 그만두는 경우도 포함된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저 갑자기 일을 하기 싫어서, 혹은 건강이나 다른 여러가지 개인사적인 문제로 현재 안정적인 길들을 포기한다. 그 사람들의 선택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길을 벗어나고 선택하는 것 자체가 자기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개인적 요인들 때문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안정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착각에 불과하다. 그건 타임머신 타고 미래를 가서 내 모습을 확인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늦은 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럴리 없다. 지금 사회의 기준으로 분명 나이 들어 도전하는 것은 젊을 때 도전한 것보다 늦었다고 평가된다. 기회도 길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세상이 그런 사람들에게 우호적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확률로 보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늦은 건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결과에 대한 통계나 확률을 생각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모두 버리라는 뜻이다. 나의 미래를 어둡게 생각하는 것도, 혹은 내 미래가 잘될 거라고 믿는 것 역시 헛된 예측이다. 어차피 그런 예측은 할 수도 없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평생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별볼일 없는 결과만을 내고 끝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쌓여 있다.
그래서 늦은 건 없으니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도전하고 선택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나 역시 계속 변하니 나의 미래는 어떤 식으로 예측해도 그 예측행위 자체가 쓸데 없는 행위다. 미래는 누구도 모르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미래에 대해 불안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괜히 종교가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사실 없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겁이 나서 선택하거나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후회된다는 노인 분들은, 그걸 돌려 표현한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였는데,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걸...미래가 불안하다는 걸 받아들일 걸...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냥 받아들일 걸..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