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답을 듣기 어려운 이유
의료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이 가끔 건강이나 의료 행위, 약 등등에 대한 질문을 하십니다. 질문하는 내용들은 결코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이러한 증상이 있는데 어떤 약을 먹어야 하나' '이런 치료/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괜찮을까?' '이러저러한 상황인데 어떤 영양제가 도움이 될까?' '백신을 맞아야 할까? 안전할까?' 아마 똑같은 질문을 다양한 의료계 종사자 분들에게 물어봐도, 확실한 답을 듣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라는 애매모호한 답이나,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문제 없다' 라는 식으로 마치 '나'라는 개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어떤 불특정 다수 집단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대답하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마치 '알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는 건가?' '지식 독점을 통해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진 않으셨나요?
사실 이것은 바로 의료와 건강 관련 지식 체계의 특징 때문인데, 이는 더 나아가 인간의 몸에 대해 현대 과학이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으며 또한 우리 몸이 그만큼 예측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생물학과 인접 학문들의 발전과 동시에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고 이제 인간 유전자 수준의 분석도 가능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 몸의 복잡성과 과학 기술 수준의 한계 뿐 아니라, 사람 몸에 대한 실험 연구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 몸에 어떤 처치를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동물 실험에 할 법한 비인간적인 실험을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코로나 팬데믹 때 처음으로 유전자 복제 물질, 즉 RNA를 활용한 백신이 개발되어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계 사람들에게 접종이 이루어졌죠. 그런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충분한 안전성 검사를 거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기에 예외적인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었죠. 물론 그동안의 과학 지식과 동물 실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사람 몸에 적용 했을 경우 100% 안전성이라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꽤 발생했는데,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쓰이는 다른 백신들의 부작용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긴 했습니다.
진단, 처방, 수술과 시술 등 모든 의료적 처치는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약은 적정량 이상으로 복용할 경우 심한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데, 사실 적정량 이하의 용량에서도 어떤 사람들에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몸에 칼을 대거나 물리적인 충격을 주는 모든 처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사전에 어떤 사람들에게 이득이고 어떤 사람들에게 부작용을 발생시킬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죠.
만약 가상의 AI가 있어서 인간의 영혼을 습득한 후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의학, 생물학 지식을 습득하고 모든 수술과 시술을 익히고 약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다 해도 그 AI 눈 앞에 있는 어떤 환자의 질병이나 상태 이상을 100% 완벽히 치료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물론 경미한 질환 같은 경우는 99.99..% 가능하겠지만 심각도가 더해질수록, 환자의 몸 상태가 안좋거나 평소 앓고 있는 지병 혹은 유전병이 있거나 생활 습관이 별로 좋지 않을수록 그 확률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평소에 큰 생각 없이 사용하는 소염 진통제 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다른 사고나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의료진들이 자기가 배운대로, 공부한대로, 경험한대로 반복해서 다양한 환자들을 처치하고 있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환자들 중에 건강하고 생활 습관이 괜찮은 분들이 대부분인 점도 한 몫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환경이 특별히 전염병이 돌만큼 위생이 안좋거나 몸을 해치는 마약, 정크푸드, 위험한 환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과 지식 수준도 상당히 높아 평소 건강한 삶의 방식을 서로서로 공유하며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우수하고 똑바른' 환자들이 많기에 이변이 발생할 일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같은 증상에 같은 처치를 받거나 약을 먹어도 예를 들어 열대 지역 위생도 안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부족한 지역의 환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의료나 건강 분야의 어떤 영역은 그다지 많은 연구가 되어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질병 전 단계, 즉 건강한 상태에서 질병 예방이나 건강기능식품 등 영양제 복용 관련된 문제 등에서는 실제로 정밀한 연구가 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연구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중한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평소 별다른 문제 없이 건강한 사람이 그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영양제를 먹는 것이 좋은가? 는 의료 영역에서 중요하게 실험하거나 연구할 문제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영양제와 관련된 문제도 그렇게 세밀하고 정확한 결과를 낸 연구들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 상태가 이런데 어떤 영양제가 좋을까요?' 라는 질문에 이런 저런 영양제를 추천할 수는 있지만 확실하게 답을 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영양제의 대부분은 그냥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구요.
어쨌거나 이런 여러가지 의료 분야 지식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특히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 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많이 습득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답이 있는 영역은 전문가가 필요조차 없습니다. 예를 들어 조립식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이나 답이 정해진 수학 문제를 푸는 일엔 따로 전문가가 필요 없죠. 매뉴얼이나 책을 보면 그만이니까요. 전문가의 실제 정의는 현실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전문가가 있을 필요도 없이 그냥 기계나 컴퓨터에 맡기면 되겠죠.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관련 지식과 기술, 경험을 습득한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며, 당연히 전문가라고 해서 그 문제를 모두 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영역에서 전문가의 지위에 오를 경우 해당 분야의 문제를 모두 풀 수 있게 된다면 그 분야는 더이상 전문가가 필요 없는 분야가 되어 자동화 되고 말 것입니다. 실제로 AI로 인해 일자리가 날아갈 영역이 바로 그런 분야들이겠죠.
의료 분야의 전문가는 눈 앞에 있는 환자의 증상과 상태를 문제로 상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듯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 경험을 습득해도 끝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의 경우 혹 실패를 해도 얼마든지 회복의 기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계 공학자가 만든 기계가 잘못 작동을 할 경우 시간과 비용은 들겠지만 다시 수리해서 문제를 복구시킬 수 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이 잘못된 경우, 요리 재료가 잘못 사용된 경우, 금융 업계나 정부 기관에서 행정적인 실수를 한 경우 시간과 비용이 들 뿐 다시 문제를 복구할 기회는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 분야에서의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때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애초에 의료 전문가의 실수가 아니라 애초에 지금의 현대 기술과 지식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기암으로 전이가 심하게 되어 죽어가는 환자라든지 크게 사고를 당해 출혈이 심한 응급 환자를 살리는 문제가 그렇겠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백신과 약에 대한 부작용과 급성 알레르기로 호흡 곤란이 온다든가 수술 후 예상 못한 감염, 조직 생착의 실패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 됩니다.
그래서 의료 분야에서 일하며 '내가 전문가다' '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엄밀히 말해 의료 분야와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면허를 갖고 있다고 해서 해당 분야의 완벽한 전문가도 될 수 없으며, 그런 면허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새겨 들을 지식과 경험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평생을 어떤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 지병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 의료 전문가들보다 그 지병의 어떤 면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의미 있는 지식으로 전환하거나 의료적인 용어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뿐이죠.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 의료 분야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단적으로 그 누구도 모르거나 할 수 없는 것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 역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료 분야에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추어일 뿐입니다. 의학과 생물학을 비롯해 수많은 과학 지식과 기술, 제도와 학제가 만들어진 서구 사회는 이 사실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의 전문가주의나 면허제도 등은 그냥 시대의 특수성 때문에 잠시 존재하는 것일 뿐 영속적이거나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닌 것도 잘 알고 있죠. 오히려 그런 지식, 기술, 제도를 받아들인 국가에서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만들고 구축해 온 역사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오만한 의료인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더욱 집단적인 행동과 폐쇄적인 사고 방식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권한인양 말이죠.
의정갈등이 1년이 넘은 지금,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칭하고 대체될 수 없는 전능한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얼마나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믿는 것은 우리 사회의 보수성과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다수의 국민들입니다.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도를 감히(?) 정부가, 정치인들이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고, 그래서 아무리 오만하게 굴어도 받아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역사적으로 의료는 전쟁을 거치면서 크게 발전하곤 했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자행한 생체실험 조차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지금의 의정 갈등 역시, 역설적으로 국민들 모두가 큰 위험에 빠질 경우 현재 오만하게 구는 소위 '의료 전문가들' 없이도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을 달래기 바쁜 것은, 아직은 그 정도의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들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질 때까지 본인들이 아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의료 전문가라고 부르고 그 자격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한 번쯤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