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은 비교적 젊은 학문 분야로, 뇌의 복잡성 때문에 아직까지는 뇌피셜에 해당되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그나마 쥐나 꼬마선충, 초파리 처럼 작은 동물들의 뇌는 비교적 정확한 연구가 가능하지만, 인간의 뇌 연구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죠. 동물이나 벌레처럼 통제된 실험을 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이는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해서 인간들을 생체 실험에 마음껏(?) 이용한다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뇌가 복잡하고, 또 태어나서 성인이 된 후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실험 동물 수준에서 연구된 내용을 곧바로 인간의 뇌에 적용하기도 어렵죠.
다만 사람은 직감과 다양한 지식, 경험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여태까지 나온 여러 뇌과학 지식을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까지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 각종 정신적 문제를 분석해온 심리학은 21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그 영향력을 뇌과학에 내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심리학이 개발해온 인문, 사회과학적 통찰과 뇌과학이 밝혀낸 생물학적 연구 결과들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들은 아직까지 확답을 내릴 수 있을만큼 무르익거나 긴 시간의 검증을 거치진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설명할 우울과 무기력 등에 대한 뇌과학적인 설명도 아직까지는 가설 단계에 있고, 많은 추정이 들어간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쉽게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고 자주 공허한 감정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원인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부모와의 애착 관계 실패, 자라면서 겪은 수많은 좌절, 만성질환, 유전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실은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진화론적으로 그냥 원래 그런 성향을 갖도록 타고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경우라고 가정하고, 그런 성향의 원인을 설명하는 미시적인 원인 가설 중 하나를 들어 그 원인을 알아보고,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울이나 무기력, 공허와 반대되는 효과, 즉 매우 즐겁고 쾌락적이며 열정과 흥분을 일으키는 뇌 속 기구는 도파민 회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도파민' 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신나는 일, 쾌락적인 일을 할 때 '도파민이 분출된다' 라는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서도 이같은 말을 하는 방송인들이 많죠. 도파민이 쾌락과 즐거운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몸 속에서 도파민의 역할은 매우 다양합니다. 운동, 공간기억, 학습, 모유수유, 성적행동, 후각과 시각 반응 등 몸의 여러 기능이 도파민과 관련이 깊죠. 여기서는 그 중 학습과 쾌락 관련된 기능을 중심으로 도파민 회로의 기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파민이 가장 많이 합성되는 부위는 중뇌에 밀집되어 있는 신경세포들입니다. 중뇌의 VTA, SN 이라 불리는 부위가 사실상 도파민 보상 회로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위에서 도파민 신경회로가 가장 많이 연결된 부위를 '선조체' 라고 하는데, 결국 중뇌의 VTA,SN - 선조체 연결 회로가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도파민 회로' 라고 하겠습니다. 선조체는 운동, 학습, 쾌락, 동기 부여, 결정 등 우리가 일상을 사는 동안 더 좋아하는 행위, 더 하고 싶은 일, 더 의욕이 넘치는 일을 찾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데 관여하는 뇌의 '기저체'라는 곳에 속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뇌변연계와의 연결 부위가 중요한데, 자세한 구조를 알 필요는 없고 그냥 우리 뇌의 도파민 회로가 우리 스스로 의욕적으로 즐거움을 찾아 살도록 기능한다는 것만 이해하면 됩니다.
평소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은 이 도파민 회로가 보통 사람들보다 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꼭 병적 상태라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파민 회로가 너무 자주 작동하면 우리 몸에 여러가지 측면으로 부담을 줄 수 있는데, 그래서 도파민 회로의 활성도는 어쩌면 우리 몸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과 관련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타고나기를 도파민 회로가 매우 예민하게 셋팅되어 있을 수도 있죠. 그 이유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경험상 예민하고 다소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도파민 회로의 어떤 특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도파민 회로 안에서 도파민이 작용한다는 말은, 하나의 신경 세포에서 다음 신경 세포로 도파민이 적절히 분비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때 도파민이 너무 많이 방출되면 중독이 되고, 너무 적게 방출되면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양의 도파민이 방출되지만 신경세포가 그 도파민을 너무 많이 흡수할 경우, 도파민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역시 우울하거나 무기력해질 수 있겠죠. 현재 유력한 가설들을 살펴보면, 매우 예민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사람들, ADHD처럼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렇게 도파민 방출량이 적거나 도파민을 재빨리 청소해 버리는 기구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보다 도파민 회로 속 신경세포 사이에서 도파민이 자주 고갈되는 셈이죠.
이렇게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 달콤하고 맵짠 음식 등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찾아 먹는다든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외부 활동은 자제하는 대신 컴퓨터나 모바일 폰으로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컨텐츠에 푹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이나 담배를 자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족한 도파민을 분비하고 싶어하는 일시적 보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장기적으로 건강에 더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하죠. 당분이 많은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어 체지방이 늘면 몸 속 염증이 늘어나 뇌에도 염증이 자주 발생해 더욱 우울해질 수 있고, 중독적인 컨텐츠는 도파민 회로를 더욱 무디게 만듭니다. 술과 담배의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는데, 술과 담배 모두 단기적으로는 보상과 쾌락에 관여하는 중뇌변연계 회로의 도파민을 증가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감소시킨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도 어떤 특정한 일이나 행동은 열정적으로 하고 특정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히 중독적인 음식이나 컨텐츠, 약물 등에 빠지는 것이 아닌, 좀 더 건강하면서도 열정적인 행동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극을 뜻하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루종일 요가와 춤을 즐긴다든가 미술이나 음악 작품에 매진하는 경우가 있죠. 물질적 보상이 없어도 끊임없이 영상을 만들거나 글을 쓰고 어떤 학문 분야에 깊이 빠져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시큰둥해 하는 특정 연예인, 자기 취향인 패션이나 예술품 등에 매료되기도 하죠. 갑자기 뜬금없이 무계획 여행을 떠나고,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여행지를 찾아 현지인이나 여행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에 속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런 사람들이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도파민 회로를 갖고 있는 진화론적인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들은 애초에 타고나기를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태어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현대 사회의 주된 삶의 방식이 이들은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대중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이들에게는 별다른 보상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이들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물질적인 가치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다른 여러가지 가치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보이지 않는 압력, 짧고 자극적이고 강렬한 쾌락을 주는 다양한 상품 서비스들이 오히려 이런 도파민 회로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겐 장기적으로 불행과 공허감만을 가져다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쉽게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또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적합할까요? 만약 이 문제가 정말로 도파민 회로의 낮은 도파민 문제라면, 이에 대한 힌트를 학습, 동기, 목표 행동의 보상과 관련된 도파민 회로의 특성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학습과 도파민 회로와의 관련성을 알아보죠. 학습은 말 그대로 새로운 움직임이나 운동을 익히는 것,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오감각적 정보를 익히는 것을 뜻합니다. 이같은 학습 과정 역시 도파민이 관여하게 되는데, 이 때 학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과 보상이 있을 때 잘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요리를 배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떡볶이를 만드는 법을 배운 후 떡볶이에 이런 저런 다양한 양념을 추가로 넣어 봅니다. 하지만 떡볶이 맛에 큰 변화가 없는 경우, 새로 넣은 양념에 대한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변화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혀 새로운 재료나 양념을 넣어 기존과 매우 다른 맛의 떡볶이를 만들게 되었을 경우, 뇌에선 도파민이 분비되며 새로운 재료, 양념과 새로운 맛 사이의 연관관계를 학습하고 기억하게 됩니다. 이 간단한 원리는 공부를 할 때도 적용이 되는데, 매일 비슷한 내용과 범위의 내용과 비슷한 문제를 계속 풀 때는 별다른 공부 효율이 오르지 않다가 새로운 방식의 문제 해결법을 배우거나 익숙하지 않은 내용의 지식을 공부할 때 도파민이 분비되며 학습이 잘 이루어지게 되죠. 특히 공부한 내용으로 시험을 봐서 맞추는 경우 더더욱 기억에 남게 되는데, 이 역시 예상 못한 보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런 도파민 분비를 일으킬 때까지 머리를 쓰는 과정에서 다소 힘이 들 수 있고 이해를 전혀 못하는 경우엔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 지루할 뿐 학습이 되지는 않겠죠.
이런 특성은 학습 뿐 아니라 도파민과 관련된 다양한 보상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상 가능한 보상보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적 보상을 받을 때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이는 보상예측오류라는 과정과 관련이 깊은데, 이와 관련된 현상이 바로 도파민 회로 중 즐거움, 쾌감, 의욕, 동기와 관련된 회로에서 발생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주식투자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손절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주식 투자를 한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익 (주가 급등) 을 얻은 경우, 그 때 분비된 도파민의 맛을 잊지 못해 해당 주가가 급격히 떨어져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해 손절을 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박 중독 역시 이와 비슷한데, 몇 번 전혀 예상 못한 도박 수익을 딴 초보자들은 그 때 분비된 도파민 맛을 잊지 못해 도박장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공부나 운동, 다양한 작업 활동을 통해 전혀 예상 못한 의외의 성취나 보상을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즐거움은 약물이나 음식, 담배나 술, 중독적 컨텐츠와 분명 쾌감을 느끼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같지만, 훨씬 더 이롭고 건강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당 성취를 얻는데 들어가는 긴 노력의 과정 동안은 도파민 분비가 제한되어 도파민 회로가 충분히 재정비 된 후 즐거움의 결실을 맛보기 때문에 도파민 회로가 무리하지 않고 '적절히' 반복해서 돌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적절히, 건강하게 도파민 회로를 작동시키는 삶의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행복한 인생, 의욕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타고나기를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선택할 삶의 방식도 분명해집니다. 바로 익숙하고 반복적인 것에서 벗어나고, 안정되고 정체된 생활에서 오히려 벗어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죠. 낮은 도파민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살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어도 안정적이고 정체된 라이프 스타일이 더 맞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죠. 특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뭔가를 더 배우며 살지 않아도, 익숙한 것을 더 익숙하게 갈고 닦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지위적 보상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장기적인 행복을 지키기 위한 최고의 길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세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쉽게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은, 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타고나기를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만들어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학문의 길이든, 예술의 길이든, 또는 그런 것과 상관 없이 계속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고 모임을 만드는 일이든, 색다른 아이템의 사업이든 상관 없습니다. 아마도 남들이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할 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여행 유튜버들도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하는 최종 목표가 안정이어선 안된다는 것이죠.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돈을 벌어 축적하거나 사회적 자리를 얻기 위해 다른 많은 가치들을 포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보상과 사회적 성취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을 경우 더더욱 공허하고 허무함에 빠질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균형이 중요하겠죠. 핵심은 바로 그런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 자세와 각오에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