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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야 하는 이유

by rextoys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그리고 유튜브와 SNS가 발달하면서 전에 없던 생각들이 글이나 영상 등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철지난 오춘기같은 생각, 즉 중년에 진입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이같은 의문과 고민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젊을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는 행동파들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처럼 각 연령대별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새로운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럼 예전 세대 사람들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잘 살지 못해서였을까? 젊은층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였을까? 후기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 사회의 특징이었을까? 물론 그런 영향이 매우 크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들은 모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얽혀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은 어쩔 수 없이 다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인간의 생물학적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의 한계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1960년대까지 평균 수명이 50대에 불과했다. 90년대에 들어와 70대로, 그리고 현재 80대에 진입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6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자신들의 인생이 60대 이후까지 당연히 이어질거라고 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괜히 예순잔치 칠순잔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 내내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40-50대 정도라고 여겼고, 60대 이상 사는 것은 운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영아 사망률도 매우 흔했고, 사고나 전쟁, 질병, 자연 재해로 죽는 것 역시 흔했기 때문에 60 이후까지 사는 것을 막연하게만 여겼다. 그런데 그 사이 세상이 무척 달라졌다.


현재 기대 수명이 80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1940-50년대 태어난 사람들의 생존 비율을 보고 내린 추정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중 어느 시점의 사람들부터 본격적으로 80대라는 기대 수명을 뛰어넘게 될 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물론 생물학적인 수명 추정 방법등 과학적 방법도 추정에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현실은 늘 과학적 예측을 벗어나는 법이니까.


그 뿐 아니라 요즘은 60대 이후의 노인들 중 자기 관리를 통해 무척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식습관이 불량하고 운동을 하지 않는 10대 20대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판이다. 건강을 유지하며 나이 드는 법에 관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들이 최근 20년간 수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른 나이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활 습관들을 익히고 있다. 불과 10, 20년 전만 해도 나이대와 상관 없이 사회 생활에서 자주 술 마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젊은 대학생들은 매일 술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시기부터 아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들이 늘고 있고, 담배 피는 사람들도 2012년 26%에서 2021년 20%로 부쩍 줄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선택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하루 한 두 끼는 샐러드만 먹기도 한다. 운동 열풍도 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젊은층 노인층 가리지 않고 피트니스와 요가, PT를 등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수명이 늘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도도 높아진 사실에서 기인한다. 즉, 유전자의 관점에서 인간은 애초부터 중년 이전과 그 이후의 삶의 전략이 다를 수 있다는 연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수 있다는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의 인간의 삶은 유전자 수준의 본능적 관점에 맞춰져 왔다. 즉 직업을 구해 자원을 확보하고 아이를 낳아 키워 그 아이가 자라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것에 거의 한 사람의 인생 시간표가 맞춰져왔다. 애초에 평균 수명이 40-50대인 시절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삶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저 '덤'에 불과했다. 그리고 유전자는 실은 그렇게 아이를 낳아 키운 후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이후의 삶은 유전자 입장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균 수명 40-50대라고 가정했을 때의 삶의 전략은, 80대 이상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대의 전략과 무척 달라진다. 우선 결혼은 최대한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좋고, 가급적 좋은 외모를 비롯한 성적 매력과 재력을 우선시하는 것이 유전자 입장에선 우월 전략이다. 아이를 낳아 잘 키워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것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나이 들어 서로 잘 맞지 않아 황혼 이혼을 하거나 졸혼을 하는 사람도 늘었고, 살아보니 서로 안맞았지만 참고 살았다는 노인들이 많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사실 40대-50대까지의 삶에 맞는 배우자를 이른 나이에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오류다. 어쩌면 그런 사람을 이른 나이엔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20-30대에 만나 80대 이상까지 서로 잘 맞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짝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20-30대에 찾은 짝은 본능적으로 더 우수한 자식을 낳기 위한 유전자의 욕구가 찾은 사람이다. 따라서 유전자 관점에서는 최적의 짝일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더이상 유전자가 나몰라라 하는 상태의 사람들에겐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살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사람들은 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길, 더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길을 찾으려는 경향이 크다. 이 모든 것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잘 키우는 유전자의 욕망과 관련이 깊다.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든 사람들은 더이상 그런 직업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기 싫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 역시 젊은 시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그 때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맞다. 그리고 그 유효기간이 중년이 되어 끝난 것 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개인도, 국가도 한 사람의 인생을 두 파트로 나눠서 봐야 할지 모른다. 인생 1막, 즉 유전자의 욕망을 따르는 시기에 선택할 직업과 배우자가 다르고, 2막 즉 유전자의 할 일이 끝나고 난 후에 선택할 직업과 배우자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인생을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향후 결혼 제도와 고용 정책, 일자리 정책 및 산업 구조가 바뀌게 되는데 지금은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향후엔 이것이 당연한 개념으로 잡힐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세상엔 그런 식으로 삶을 나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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