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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파편화된 세계를 사는 현대인들

by rext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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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고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기능적인 면 때문이 아니다. 요즘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도 생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와 상관 없이 그냥 사람 뇌의 세팅 자체가 진화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의 생존과 번영에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알고보면 이해 관계로 똘똘 뭉친 공동체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든든한 공동체로써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고향 향우회 모임이나 직장 모임 등은 알고보면 단순히 친분과 정을 나누는 모임 이전에 서로 정보와 인적 자원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이었다.


두 번째는 서로가 공유하는 세계가 비슷해야 한다. 초중고 혹은 그 이후의 학업 과정을 같은 곳에서 보냈다든가, 사회 생활을 비슷한 곳에서 했다든가, 관심사나 정치 성향, 가치관, 현재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이 비슷하다든가 등등.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기 쉽고 공감대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이나 매력은 적어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옛 친구나 지인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대인들은 이 두 가지, 즉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공유하는 세계가 비슷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계속해서 잃어가고 있다. 우선 모바일 네트워크 서비스와 플랫폼이 엄청나게 발달해 이제는 과거의 인맥이나 인간관계 없이도 얼마든지 정보와 자원을 공유할 수 있다. 과거엔 법조계나 의료계에 아는 사람 하나 있는 게 든든했는데 지금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은 변호사 병원 서비스가 훨씬 더 믿음직하다. 오히려 돈으로 엮여 있으니 서비스가 더욱 깔끔하다. 예전엔 직장 취업이나 이직, 승진 등에서 인간관계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링크드인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자리를 구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때가 많다. 학연, 지연을 통한 정보와 자원 교류보다 뭐든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합리적인 정보와 자원을 구할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이제 가까이 있는 사람 간에도 서서히 각자가 구축하는 세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교육이라는 것이 항상 큰 교실이나 강연장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루어졌다. 지금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국의 모든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며 언어만 되면 전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기관들의 강의도 시청이 가능하다. 실은 과거 오프라인에 모여서 강의를 들었을 때보다 더 나은데 그 이유는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반복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라인 강의는 다양한 시청자층을 감안해서 매우 자세하고 꼼꼼한 설명과 흥미 유발 거리들을 곁들여서 만들어진다. 오프라인 때보다 강의들이 더 정교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컨텐츠나 취미 활동, 사회적 모임 등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찾아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엔 취미 활동을 위한 학원이나 모임 같은 것도 다른 사람들의 소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온라인 리뷰가 내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보다 더 정확하다. 예전에는 온라인 리뷰 조작 문제도 많았지만 지금은 데이터 처리 기술이 발달해 리뷰 조작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추천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더 비합리적인 선택을 낳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자기가 원하는 컨텐츠만 소비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만 소통을 할 뿐 맘에 들지 않는 내용의 컨텐츠나 말이 안통하는 사람과의 교류는 처음부터 차단한다. 일종의 선택적 편향이 강하게 발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교류는 꼭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고 SNS나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자신과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직접 대면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서로 교류하는 메시지나 공유하는 컨텐츠는 오프라인에서 대면 접촉을 할 때보다 더욱 밀도있게 교환될 수 있다. 과거처럼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컨텐츠를 얻기 위해서는 꼭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야 했던 시대에는 그로 인해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자주 부딪히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생각이나 가치관의 균형이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쪽의 정보와 컨텐츠만 반복해서 강화가 발생한다.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유튜브에 선동되어 과격한 결정을 내린 전 대통령이나 그런 컨텐츠에 선동되서 거리로 뛰쳐나온 유튜브 시청자들도 바로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일부에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지금 모바일 인터넷 속도가 빠른 순서대로 세계는 점점 더 자기만의 파편화된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현실에서 내 옆의 사람, 자신의 가족이나 직장, 학교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지고 파편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서로 이해도 공감도 못하는 일이 많아진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단어를 쓰고 있어도 그 언어와 단어가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가 모두 다르다. 현실에서 공동체를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다.


아직 인간의 뇌는 온라인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인식하는 수준까지 진화하진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명 카카오톡으로, SNS 상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있는 것 같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고 관계의 허전함을 느낀다. 그런 허전함은 쌓이고 쌓여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공동체를 상실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분노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 극심한 정치적 분열이나 세대간 지역간 경제적 계급간 성별 갈등 그리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 학부모들의 비이성적인 교육열이나 학교 붕괴 등등은 그 근본 원인을 탐색해 보면 결국 공동체 해체 문제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대안도 해결책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가지 방식의 새로운 사회적 교류 모임 등등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단편적인 모임이 아닌, 마음을 둘 수 있는 공동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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