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돌파하고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부터 두 가지 영역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더욱 풍요로운 식생활' 그리고 또 하나는 '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 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속성을 갖고 있죠. TV나 OTT, 유튜브에선 연일 세계 각국의 요리와 창의적인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쉐프들의 컨텐츠들이 넘치는데, 다양한 음식에 대한 관심은 결국 즐겁고 쾌락적인 식생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또 한편에서는 기존의 식생활 문화를 비판하며 어떻게 하면 성인병 없이 더 건강한 식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한 건강 컨텐츠들이 또한 넘쳐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식생활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영양은 다양하게 챙기되 덜 먹고 살을 뺄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식생활을 유지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이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선 인간의 뇌 자체가 그게 가능하도록 진화되지 못했으니까요. 건강식은 결코 몸에 안좋은 음식만큼 맛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건강식이란 어떤 음식인지 잘 알고 성인병과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이 어떤 것들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WHO에서는 2035년까지 5-19세의 40%, 성인을 포함한 전 인구의 50%가 비만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을만큼 비만의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는 음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닐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자극적인 음식들이 넘쳐나고 계속해서 새롭게 그런 음식들이 발명되는 곳이죠. 이른바 맵단짠 음식들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맵단짠 음식, 그리고 과식이 몸을 망가뜨리고 노화를 촉진하며 나이 들어 성인병의 발병률을 높인다는 상식이 점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어떻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식탐을 줄일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탐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으며, 이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견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같은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식탐의 원리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식욕을 촉진하고 억제하는 데엔 뇌와 장 속 수많은 부위의 신경과 호르몬 등이 관여하고 있어서 완전한 원리를 밝히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단순화시키기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기계처럼 단순화 시켜서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식욕 촉진, 즉 입맛을 당기게 하는 뇌 부위는 뇌 속 '시상하부' 에 있습니다. 식욕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배고파서 생기는 식욕' 그리고 또 하나는 '쾌락과 즐거움을 위한 식욕' 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식욕은 각각 뇌의 다른 부위에서 일어납니다. 이 두 가지를 나눠서 살펴보기로 하죠.
한마디로 체내 에너지가 고갈되서, 당이 떨어져서, 장이 텅텅 비어서 발생하는 식욕 입니다.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즉 영양과 에너지 고갈을 막기 위한 식욕이라 할 수 있죠. 이와 관련된 부위는 시상하부의 내측핵에 있는 ARC(궁상핵) 과 PVH(뇌실주위핵) 입니다. 여기서 ARC에 있는 AgRP 신경과 POMC 신경이 주요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신경에는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leptin 호르몬과, 위장의 내분비 세포에서 분비되는 그렐린 호르몬이 작용합니다. leptin 호르몬은 주로 식욕을 억제하고 그렐린 호르몬은 식욕을 촉진하는데요, 이 두 호르몬이 작용해서 AgRP 신경은 전반적으로 식욕을 촉진하고 POMC 신경은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만 이 때의 식욕은 위에 말했듯, 배고파서 생기는 식욕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전한(?) 식욕이라 할 수 있고, 탐닉적이고 과식을 하게 만드는 식욕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시장이 반찬이다' 라는 말을 쓰는데, 이 때 작용하는 식욕이 바로 이 시상하부 내측핵에서 발생하는 식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맛이 없는 음식도 배가 텅 비어 있을 때는 나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식욕이 작용해서죠. 배가 차서 포만감이 느껴지면 이 식욕은 더이상 발생하지 않으니 안전한 식욕이라 할 수 있죠. 아마 20세기 이전 인류사의 기간 내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안전한 식욕만을 채우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ARC의 AgRP 신경과 POMC 신경은 일종의 배고픔 식욕 조절자로 이 신경은 PVH로 연결되어 있고, PVH가 결국 뇌간, 척수 등 중추신경에 명령을 내려 식사를 하고 싶게 만들거나 하기 싫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화 시켜 차에 비유하자면 ARC가 악셀과 브레이크, PVH는 그에 반응하는 자동차 엔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차가 가면 식욕 증가, 멈추면 식욕 감소?
말 그대로 쾌락과 즐거움에 관련된 식욕, 즉 바로 과식과 비만에 문제가 되는 식탐 관련 식욕을 뜻합니다. 이런 탐닉적 식욕과 관련된 뇌의 기관은 외측 시상하부와 중뇌변연계라는 곳의 VTA(복측피개영역), NAc(측좌핵) 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부위는 우리 뇌에서 즐거움, 쾌락 보상에 관한 핵심 부위 입니다. 외측 시상하부의 신경과 VTA, NAc 부위는 서로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매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혹은 입맛을 돋우는 시각적인 자극의 음식을 볼 때, 화려하게 차려진 음식 플레이팅과 맛있는 냄새가 날 때 등의 상황에서 이들 신경이 작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측 시상하부는 VTA를 자극해 쾌감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 때 느끼는 강한 쾌감은 배가 불러도 해당 음식을 더 더 먹도록 만듭니다. NAc는 이 과정에서 조절자 역할을 하는데, 탐닉적 식욕을 더 강화 시키기도, 약화 시키기도 하죠. 또한 NAc는 마약을 할 때 자극되는 마약성 수용체라는 opoid 수용체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런 탐닉적 식욕은 배가 부르거나 에너지가 채워진 것과 상관 없이 작용합니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 라는 말을 쓰면서 분명 배가 엄청 부른데도 디저트를 먹기 시작하니 또 그게 들어가는 경험을 다들 하셨을 겁니다. 애초에 디저트는 배 부른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이죠. 특히 알코올이나 첨가당을 먹을 때, 설탕과 지방을 먹을 때 탐닉적 식욕이 자극되는데, 지방과 설탕을 같이 섭취하면 각각 따로 섭취할 때보다 도파민이 더 분비된다고 합니다. 설탕과 지방을 탐하는 신경 회로가 각각 따로 있을 것으며, 이 둘이 자극받을 때 더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탐닉적 식욕은 학습 효과가 있어서, 맵단짠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강한 쾌락을 느꼈다면 다음에는 그냥 음식만 보고도, 혹은 그 음식을 먹은 장소에만 가도 도파민이 분비되기도 한답니다. 이러니 다들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에 가기만 해도 즐거워지면서 고기와 술, 디저트가 당기는 거지요.
그럼 대체 이렇게 과식과 비만, 나아가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탐닉적 식욕을 일으키는 신경 회로는 왜 있는 걸까요? 그런데 알고보면 이 탐닉적 식욕이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하는데, 그 중 하나는 과거 원시시대 때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도 에너지를 비축하도록 하기 위한 기능이고, 또 하나는 천적등의 출현으로 생존 문제가 달렸을 때 식욕을 억제하는 기능입니다. 즉 탐닉적 식욕을 일으키는 신경 회로는 역설적으로 생존을 강하게 위협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즉각 식욕을 억제해서 앞에 있는 음식을 놔두고 도망가게 만드는 것이죠.
분명 배고픔에 식욕이 일어나는 부위와 탐닉적 식욕이 일어나는 부위가 따로 있긴 하지만, 실제 식욕은 이들 부위가 매우 복잡하게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얽혀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영역 외에 뇌의 다른 부위도 자잘하게 식욕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장의 신경과 장내 미생물 등등도 식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죠.
하루종일 굶고 식사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과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참 굶고 식사를 할 때는 탐닉적 식욕도 같이 자극되기 때문이죠. 운동을 하면 식욕이 더 당기는 경우도 있지만 또 반대로 식욕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불안, 우울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경우 탐닉적 식욕이 일어날 수도 있구요. 식욕과 관련된 여러가지 유전자도 밝혀지고 있는데, 배고픔을 억제하는 leptin 호르몬이 결핍되는, 백만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특이한 돌연변이 유전자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한 식욕은 특정 몇몇의 유전자 변형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중독에 취약한 특성 등 좀 더 탐닉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탐닉적 식욕에도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과식하고 탐닉적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죠.
결국 식욕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 강조해서 식욕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종합적으로는 결국 식욕과 관련된 뇌 속 수많은 부위의 신경 간 상호 소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균형 또 균형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과도한 단식, 특정한 영양소를 극단적으로 제외한 식사, 정신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올라올 때까지 무리하게 맛있는 음식을 피하는 것 등등은 모두 식욕 신경과 관련된 균형을 무너 뜨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동안 마약 등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에 대한 중독이 많이 연구되어 왔습니다. 약물 중독은 위에서 알아본 중뇌변연계의 VTA, NAc 와 관련된 도파민 분비로 인한 중독, 그리고 강박적인 사고와 관련이 깊습니다. 식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인간의 모든 중독적 메커니즘은 결국 같은 부위에서 비슷한 원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음식 중독 역시 마약 중독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죠.
결과적으로 식탐을 줄이는 것은 스트레스 받을만큼 끼니를 억지로 줄이지 않고, 건강식을 챙겨 먹으려 노력은 하되 어쩌다 한 번씩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도 먹고, 식사 외에 일상을 즐겁게 해 줄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식사 외에는 달달한 음료나 스낵 등 설탕과 지방이 많이 든 간식을 가급적 줄이는 것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특이하거나 확실한 다이어트 요법, 식탐 줄이는 방법 같은 것은 없으니 안심하고(?) 그런 것을 강조하는 특이한 비법들은 다 무시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