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모네 추억의 부엌 스틸

by 치의약사 PEN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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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나는 방학만 되면 무슨 정기 행사처럼 작은 이모네에 놀러가곤 했다. 처음엔 엄마를 통해서 가도 되냐고 묻다가 나중엔 그냥 직접 전화해서 언제 간다고 통보(?)를 하고 가게 되었다. 찾아가면 이모가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꽤 민폐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모네 가면 나보다 각각 3살, 5살 어린 사촌이 있었는데 내가 별로 놀아주지도 못했다.


이모 집에 가면 늘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선 컴퓨터 오락을 실컷 했는데, 우리 집보다 성능 좋은 컴퓨터로 고인돌 게임을 비롯한 몇 몇 게임을 끝판 깰 때까지 주구장창 했던 기억이 난다. 저녁엔 이모가 비디오 가게에서 이런저런 비디오를 빌려다 보여줬는데, 이모가 007 시리즈를 좋아해서 사촌 동생들과 다같이 둘러 앉아 007 영화를 돌아가며 봤다. 나중에 비디오 가게 가서 빌리려고 하니 나이 제한 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라. 이모는 그런 면에서 좀 오픈(?) 마인드였고, 그래서 여러모로 이모네 가면 뭔가 마음이 편했다. 이모가 우리들을 데리고 신경써서 어디 놀러도 자주 갔다. 동생들 역시 내가 가면 어딘가로 놀러 가니 그게 꽤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


밤이 되면 내가 5살 어린 사촌 동생과 으레 하는 놀이가 있었다. 방에서 몰래 나와 부엌으로 들어가 뭔가(?)를 훔쳐먹기! 이게 참 배가 부른 것과 상관 없이 이모네만 가면 꼭 했던 놀이였는데, 목표는 이모와 이모부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왔다갔다 하는 것! 무엇보다 소리 내지 않고 몰래 몰래 발소리 죽여가며 섬세한 손동작(?)으로 냉장고나 찬장 등등을 열어 누가 숨겨놓지도 않았지만 숨겨놨다고 가정한 보물, 아니 음식을 꺼내 무사히 기지로, 아니 침실로 돌아오는 것! 나는 그 두근두근한 스릴 넘치는 상황을 즐겼다. 사촌 동생도 열심히 나를 따라 살금 살금 발을 옮기며 우리의 임무(?)를 수행했다. 마치 완전 범죄를 실행하는 꼬마 도둑들처럼!


이 스릴을 즐길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이모부가 늦게 퇴근하신 후 밤 늦게까지 안방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이모와 주전부리를 드시는 상황이었다. 왜? 그래야 더 스릴 넘치니까! 일찍 주무시면 애초에 '몰래' 라는 것이 성립이 되지 않는다. 밤 늦게까지 이모와 이모부가 부엌과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셔야 그 사이 사이 시간을 맞춰 움직일 것이 아닌가! 그리고 티비를 틀어놓고 깨어 계셔야 '조심하지 않으면 들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한 번은 음식을 탈취해서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이모부가 부엌으로 오셔서 재빨리 식탁 아래 숨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이모부가 불을 켜지 않고 냉장고에서 맥주만 꺼내 가셔서 들키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서 획득한 전리품을 보며 나와 동생은 뭔가 해냈다는 기분에 자축을 했는데 아마도 그 순간 머리 속에서 쎄게 방출된 도파민의 기억을 잊지 못해 그 후로도 그 짓(?)을 계속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귀엽고 작았던 사촌 동생은 이제는 키 185쯤 되는 거구의 헬스장 오너가 되었다.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아 그 때 밤에 같이 부엌 스틸을 하던 그 애 맞나 싶고 뭔가 너무 낯설어서 그 때의 세계와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같은 곳이 맞는건가 싶기도 하다. 최근 결혼해서 아마도 곧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데 참 그 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가는게 이게 맞나 신기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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