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날카로운 역습
여름에 폭염이 있다면,
그렇다. 겨울에는 한파가 있다.
한파를 환영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파가 있으니까 붕어빵이 더 맛있고, 군고구마가 더 맛있는 건 사실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아래 동요를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바람 때문에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겨울바람 때문에
어디서 이 바람은 시작됐는지
산 넘어인지 바다 건넌 지
너무너무 얄미워
겨울만되면 TV에서 많이 듣기도 하고, 따라 불러도 봤던 이 동요처럼 한파가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겨울바람' 때문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매년 찾아오는 한파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파는 겨울철에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현상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기상청에서는 한파의 기준을 더욱 수치화해서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한파 또한 특보요소 중 하나이므로 한파주의보와 한파경보 각각 발령하는 기준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한파특보는 10월부터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까지로 기간을 제한한다.
한파주의보는 아래 셋 중 하나의 경우에 해당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한다.
첫째, 아침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하강하여 3도 이하이고, 평년보다 3도 이상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둘째, 아침최저기온이 영하 12도 이하로서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셋째,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한파경보는 다음 셋 중 하나인 경우에.
첫째, 아침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5도 이상 하강하여 3도 이하이고, 평년보다 3도 이상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
둘째, 아침최저기온이 영하 15도 이하로서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셋째,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우리나라에 차가운 바람을 공급하는 공급원이 존재한다.
한파 생산자는 북극이고, 한파 도소매상은 시베리아 기단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생산자인 북극이 한반도까지 한파를 직송해 줄 수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북극은 조금 더 한반도와 가까운 시베리아 기단에게 하청을 맡겨, 궁극적으로 북극에게서 전달받은 한파를 시베리아 기단이 우리나라에 가져다주는 것이 보통의 겨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정기배송의 형태를 갖고 있다.
대략 5~7일 정도의 주기로 신상 한파를 가져다주는데, 삼한사온이란 말이 나온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옛말이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중위도지방에서 -30~-40도의 극한의 한파가 몰아닥치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따금씩 -15도 내외의 강추위가 관측되고 있다. 이는 하청 받은 시베리아 기단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한파의 규모이다. 생산자인 북극 공기가 데워지지 않은 채 거의 산지직송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인 걸까?
그렇다. 우리나라의 겨울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북극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찬 공기를 전달받는 것이 아닌 한차례 데워진 시베리아 기단으로부터 온 찬 공기를 마주하는 것인데, 이때 찬 공기를 북극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을 수 없는 전 지구적인 이유가 있다. 그냥 멀어서 못 오는 것이 아니다.
극지방과 중위도지방 경계 상공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극지방을 감싸고 동진하는 한대 제트기류가 북극의 공기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차단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호등이 점멸된 차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으로 건너고자 할 때, 지나가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건널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게 건너편의 사람들과 섞이기 매우 힘든 조건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차들이 저속으로 진행하거나 보행가능하도록 기다려준다면, 우리는 건너편의 사람들과 비로소 서로 왕래하며 섞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기후로 인해 제트기류의 속도가 약해지는 빈도가 늘고 있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그동안 차단되었던 극지방의 공기와 중위도지방의 공기가 서로 섞이게 되고, 곧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직배송되는 것과 같은 이른바 북극한파가 찾아오게 된다.
우리나라에 북극한파가 찾아오는 구체적인 과정은 이렇다.
ep 1.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은 제트기류는 힘없이 약해진다. 팽팽하게 동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던 제트기류는 어느샌가 힘없이 축 늘어져 남북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동진하는 게 뱀의 움직임이 따로 없다. 사행.
ep2.
북극 공기는 늘 남쪽 세상이 궁금했다. 하지만 북극을 가로막고 있는 제트기류 때문에 도통 남쪽 구경은 할 수 조차 없는 것이 현실.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트기류가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린다. 북극 공기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ep3.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치우칠 때 북극 공기는 세게 한 번 밀어 본다.
밀린다.
그동안 대륙을 경험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북극 공기들은 마침내 우랄산맥까지 도달하니 친화력 좋은 시베리아 공기들이 마중까지 나와 기다린다.
ep4.
들뜬 북극 공기들에게 시베리아 공기들이 유혹한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공기들의 자유롭고 광활한 대륙 스케일 시스템을 실제로 마주한 북극 공기들은 너무나도 설렌 나머지 그 자리에서 바로 합세하여 한반도로 곧장 직행한다.
약해진 제트기류 때문에 북극한파가 닥치는 거라면, 도대체 왜 제트기류는 약해지는 것일까.
먼저 제트기류의 발생 원리를 알아야 한다.
제트기류는 위도 간 열적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데, 쉽게 말해서 극지방은 차가울수록, 중위도지방은 따뜻할수록 제트기류는 강해진다.
즉, 큰 온도차이가 강한 제트기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제트기류가 약해진다는 것은 극 또는 중위도 둘 중 하나가 반대의 상황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중위도는 태양에너지를 가장 적게 받는 극지방보다 차가워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범인은 극지방의 온난화로서 사건은 종결된다.
이렇게 극지방이 따뜻해지면서 중위도지방과 온도 차이가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극과 중위도 사이를 맴도는 제트기류 또한 약화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북극해가 온난해지면서 상공에는 평소와 다른 대기의 흐름이 발생하고, 이 흐름은 곧 제트기류에도 영향을 미쳐 기존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파에도 컨디션이 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한파를 본질적으로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요소와 그렇지 않도록 해주는 기상학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한파는 최저기온이 얼마큼 떨어지느냐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아침최저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알아보면 된다.
첫째, 새벽시간의 하늘 상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일수록 기온은 급감한다.
이와 반대로 새벽에 흐리다면 지구에서 우주로 방출되는 지구복사에너지가 구름에 의해 차단되거나 보존된다. 비까지 오는 날이면 대기 중 습도가 증가하면서 도통 아침최저기온은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둘째, 새벽시간의 바람.
새벽시간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일수록 기온은 더 떨어진다.
일단 바람이 많이 불면 더 춥게 느껴지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 즉, 이미 차가워진 공기들을 정면으로 맞아 몸의 열을 빼앗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따지자는 의미니까 바람의 영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건 바람이 어떻게 했을 때 공기들을 더 차갑게 할 수 있느냐를 따지자는 것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바람은 불지 않을수록 공기들을 더 차갑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찬 공기는 아래로, 더운 공기는 위로 향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바람은 이걸 자꾸 섞어버리기 때문에 대기 상층과 하층의 기온 분포가 상대적으로 고르게 된다.
셋째, 중력.
앞서 말했듯이 찬 공기는 아래로 깔리려는 성향이 강한데, 하필 지구의 중력 역시 밑으로 잡아당기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찬 공기는 쌓이는 성질을 띤다. 따라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연속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최저기온은 계속해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폭염의 경우에는 위로 올라가려는 따뜻한 공기의 성향과 중력의 방향이 반대되어, 더운 날이 지속되더라도 상승하는 폭이 한파의 경우보다 작다.
물론, 이는 위에서 언급한 하늘상태와 바람의 여부보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작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기보다 기본적인 속성으로 인식하고,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구온난화가 최강 한파를 일으킨다라는 말이 참 아이러니하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는 듯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대기 순환의 메커니즘은 정말 복잡하고 변수가 다양하기에 아주 예민하게 조심히 다뤄야 할 거대한 전자기기 같다.
단지 스케일이 거대한 만큼 그 결과가 도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이다.
받은 만큼 되갚는 자연 앞에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그날이 언제일지 궁금해하기보다 어제 나는 그에 관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는 것이,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탁월한 지름길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