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기회

by Rey

어둠 속에서 정우의 얼굴을 비추는 건 휴대폰 화면의 빛뿐이었다.


메일함에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며칠 전 면접을 본 회사였다. 정우는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눌렀다.


귀한 시간. 아쉽게도. 다음 기회에.


끝까지 읽었다. 창을 닫았다.


받은 편지함에는 같은 제목의 메일들이 쌓여 있었다. '최종 결과 안내', '전형 결과 안내' 파일 이름처럼 비슷했다. 열어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열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이력서 파일을 보냈을 때마다 제목을 바꿨다. 이력서_최종, 이력서_진짜최종, 이력서_최종수정. 처음엔 제목을 오래 골랐다.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마지막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정우는 문득 그 파일 이름들이 더 민망하게 느껴졌다.


면접장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경력이 많으시네요."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이어지는 문장은 늘 비슷했다. "저희 조직과는 조금…"


조금.


그 '조금'이 벽처럼 느껴졌다. 마흔일곱. 이력서에 숫자를 적을 때마다 그 숫자가 먼저 읽힌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자기소개서보다 먼저. 경력보다 먼저.


어느 순간부터는 메일이 와도 심장이 뛰지 않았다. 대신 어깨가 먼저 내려앉았다.


휴대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얼룩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방문 너머 부엌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 수도꼭지가 잠기는 소리.


그리고 침묵.


기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길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긁어 올리는 듯한 소리였다.


정우는 상체를 일으켰다가 멈췄다. 지금 문을 열면,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해야 했다.


천장의 같은 자리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메일은 닫혔는데,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기회에.


기침 소리가 멎었다. 집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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