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신나 있는 대학 신입생 때,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나갈 미래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과 내에 속해있는 한 동아리에 지원했다.
면접은 생애 최초였던지라 상당히 서툴렀다. 요즘 면접처럼 만들어진 이미지를 겉에 씌우고, 가식적으로 역할극을 하는 방식으로는 못했다.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어버렸다. 나중에 처음 소개해줬던 선배에게 내막을 듣게 되었다. 본인 빼고, 면접관으로 있던 모든 사람이 저를 거부했다고 했다. '아.. 나 되게 비호감이었구나..' 여기서 한 번 마음의 상처. 그 선배는 자기가 한 번 믿어달라고, 괜찮은 애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해서 뽑힐 수 있었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맘에 안 들었으면 그냥 떨어뜨리지 왜 붙여줬나 싶다.
일단 뽑혔으니, OT에 갔다.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교의 동아리는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인 줄 알았다. 선후배가 서로 사이좋게, 친근하게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원하는 동아리가 부드러운 분위기일 줄 알았다. 지금이야, 처음 보는 자리에서 좀 깝죽거리는 사람처럼 보이면 미움 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난 순진한 20살. 자리에 각 잡고 앉아있지 않고, 약간 누워있듯이 조금 편하게 앉아 있었다. 앞에 서있는 선배는 저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OT가 진행되고, 중간에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엉덩이를 의자 안쪽에 딱 붙여 앉지 않으면서, 허리를 꼿꼿이 펴지도 않은 나에게 순간, 일침이 하나 들어왔다.
"OOO 학생은 진지한 자세로 임할 생각이 없나 보죠?"
정색하는 표정, 아니꼬우면서 단호한 말투, 시선집중, 거기에 동기로 같이 들어온 다혈질 선배의 신경질적인 표정까지... 하나같이, 군대처럼 정자세로 앉지 않고 편하게 앉아있는 게 꼴 보기 싫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한순간에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잘못 들어왔구나.' 싸한 분위기로 OT는 끝났고, 동아리실로 모두가 향했다. 너무 창피하면서, 어느 한 명 편하게 눈 마주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바로 탈주하고 싶었지만, 뽑아준 사람이 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동아리실은 건물 한 구석 으슥한 곳에 있었고, 공간은 1평 남짓 했는데, 사람은 8명 정도 들어갔다. 그 좁은 공간에 미운털 박힌 한 사람이 동기들, 다수의 선배들과 함께 있으려니.. 게다가 동기들 중에는 선배들이 더 많았다. 일단 주눅 들 수밖에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있었다.
군대도 아닌데, 왜 군대식 문화가 있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동아리 운영을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 싶다. 입학 당시만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대학교 OT·MT 음주사고 등 사건사고가 많았을 때라 대학문화가 상당히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문화가 예전과는 다르게 자유로울 줄 알았고,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지 않고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동아리 외 다른 모임들이 편한 분위기로 진행되길래, 과 동아리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 군대식. 1년이든 2년이든 선배는 선배. 선배에게 지나치게 공손해야 하고, 굽실대야 하며, 비합리적으로 순종적이어야 했다. 동아리 내에서 교육이나 회의 진행 때는 무조건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했고,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했다. 선배가 짓궂게 장난쳐도 싫은 티를 내면 안 되었고, 하는 말마다 꼬투리 잡기 일쑤여서 말도 편하게 못 했다. 편안한 분위기를 생각했지만, 매 1분 1초가 불편했고, 눈치를 계속 봐야만 했다. 게다가 같은 기수여도 그 안에서 선배는 선배이니까 선배 대우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윗 기수 선배는 동기끼리 편하게 잘 지내라 하던데?
자신에게 예의를 갖춰주길 바라면서 상대방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의 없이 행동하는 선배들을 예의를 구걸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본인이 몸소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서 타인이 본인에게 그러길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태도이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타인이 행동하길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의를 예의 없게 강요하는 사람을 보고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동아리 선배들을 보고도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참 이기적인 사람들이구나.
게다가 전공 관련해서 몇 가지 활동하는 평범한 '동아리'가 꼭 엄숙하면서 위계질서가 분명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선후배끼리 몇 년 차이 나지 않았고, 군대처럼 신속하게 명령대로 움직여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이해가 안 됐다. 군대도 아닌데 군대식 문화여야 하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굳이 얼굴 붉힐 필요가 있을까, 둘 중 한 사람은 기분 나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가. 단지 공부하는 대학교일 뿐인데 그냥 모두가 친근하게, 편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대학문화를 이해 못한 나는 점점 고립되었다. '동아리인데 분위기가 왜 군대식이지? 참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모두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