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좀 한다는 중간급들이 무더기로 퇴사해서 요즘 문제이다. 일 잘하고 열심히 하는 직원들은 남들이 더 좋다고 하는 회사로 떠나버리고, 일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만 회사에 남아있는다. 옮기지 못한 일잘러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일에서 손을 뗀다. 신입 때는 열심히 하던 직원이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업무를 맡겠다는 의지가 점점 더 줄어들어서, 고연차가 되었을 때는 매일 놀 생각만 하는 선배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예전에는 진급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회사에 목숨을 바칠 각오로 일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흔치는 않다. 공공기관도 관리자에 올라가기 위해서 열정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꽤 있었지만,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하는 선배들이 내 주변에도 많이 보인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분위기도 일을 잘해봤자 별로 얻는 게 없다는 대다수의 관념이 만들어낸 사회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직원들 진급을 대대적으로 시행했는데, 일 잘하는 직원 입장에서 불만이 생길 만한 일이 있었다. 업무성과가 높든 낮든 동기라면 다 같이 한 번에 진급시켰는데, 성과가 높은 직원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만했다. 연봉이 사기업에 비해 낮은 공공기관은 진급 말고는 열의를 불러일으킬 만한 유인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진급마저도 평등하게 시킨다는 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알아서 회사가 챙겨준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뭘 위해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지 혼란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 되면 알아서 진급하는 조직이면, 진급을 목표로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방향성을 잃게 될 것이다. 남들처럼 적당히만 해도 회사 내에서 남들과 비슷하게 생존할 수 있다면, 무리해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결국 남들처럼 평탄하게만 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불만이 있는 직원은 더 경쟁적인 회사, 더 대우가 좋은 회사를 찾아 이직하게 되고, 불만 없이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끼는 직원은 회사에 남아 적당히 일하며 월급만 바라보는 직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비슷비슷해진다.
고성과자를 붙잡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할 텐데,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와 담당자들마저도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연봉, 복지 등 직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과실들은 대체로 법령, 행정규칙, 상위기관 지침 등을 통해 강하게 통제된다. 공적인 업무를 하는 근로자는 적은 보수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급여나 복지혜택 등을 높일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한도 내에서 직원들끼리 잘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만큼 일을 적게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권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발판으로 또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철학 없이 기관장에 앉는 사람이 대부분이라서 업무량은 상당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본인 치적 쌓기용 사업들을 추진하니, 인력증가량보다 업무량이 훨씬 더 많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기존에 하던 불필요한 과업들을 줄여야 하는데, 이마저도 성과가 줄어든다, 민원이 들어온다 등의 핑계로 줄이지 못하니까 절대적인 업무량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직원수를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에서 급여, 복지만 줄이는 게 아니라 직원수도 줄이고 싶어 한다. 방만경영을 타파하겠다는 명분으로 더 강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사실 방만경영을 줄이려면 추진하는 사업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진급마저도 평등하게 하면, 일 욕심이 있는 직원들은 회사생활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모든 이익이 성장하지 않고, 차별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줄어든다면, 일을 열심히 할 이유를 잃게 된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길 바란다면, 열심히 할 이유를 심어줘야 하는데, 요즘은 그럴 이유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진급 같은 물질적인 혜택이 아니라면, 비물질적인 유인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요즘 관리자들은 고성과자를 귀찮은 일 열심히 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일 잘한다고 특별히 더 대우해 주는 것도 아닌데 업무분장 나눌 때 툭하면 업무만 더 부과한다. 다른 직원들과 차이 나게 일을 잘하면, 그만큼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차별대우를 해야 하는데 그런 개념이 없으니, 다들 실망해서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직원들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니까.
나는 사내에서 수여하는 포상 때문에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포상을 연차 순으로 챙겨주고 있었는데, 최근엔 연차 상관없이 수여를 해주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인사이동이 늘 다른 직원 땜빵용으로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일 못하겠다고 휴직하거나 인사고충을 제기하면,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가는 식이었다. 입사 초반에는 업무 열의가 있었기에 신입이 할 만한 업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회사가 나를 호구로 인식을 한 건지는 몰라도, 인력을 빼버리고 혼자서 다 하라고 하니, 그때부터 상당히 힘들어졌다. 내 본연의 업무에 더해 선임들이 하던 업무까지 하라고 하니, 업무량도 많았고 업무 난이도도 상당히 높았다. 타 부서 업무협조도 안되고, 업무량도 감당이 안되니 퇴사 생각도 참 많이 했었다. 아직 젊으니까 젊었을 때 도망가자, 이런 무책임한 회사를 어떻게 다니냐 등등 여러 고민들을 짊어지고 살았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른들이니까, 내가 개고생 한 것을 잘 아니까, 때가 되면 포상이든 인사평가든 챙겨줄 것이라 믿었다. 사람을 믿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 배신자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고생스러운 시기가 지나고, 연말에 포상이 수여되었다. 사전에 나에게 주겠다고 임원이 약속까지 했었지만 결국 포상은 받지 못했다. 인사부서장은 고생 안 하는 직원이 어디 있냐는 말을 하며 내가 포상을 받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줬다 뺏기는 것 같아서 화가 상당히 났던 것 같다. 나중에 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에 분노해서, 안 받고 말겠다며 소리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지금 다니는 회사를 관두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서, 힘들었던 당시 상황에서 바로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 최후통첩도 했었다. 인력보강 안 해주면 연말까지 다니고 관두겠다는 얘기를 했었고,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인력이 없는데 더 없어질까 봐 그제야 부랴부랴 부서를 통합시키며 인력을 보강시켜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관뒀어야 했는데, 그때까지도 뭔가 회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신입의 순진한 믿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때 버텼던 이유 중에 내가 퇴사하면 내가 모시던 팀장도 그렇고, 선배들도 그렇고, 여러 사람이 고생할까 봐 미안해서 참은 것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젊은 직원이 그렇게 고생하면 형식적으로라도 고생했다고, 잘 버텼다고 할 만한데, 그렇게 위로해 주는 직원 하나 없었다. 선배도 없었고, 동기들도 없었다. 지나고서 생각해 보니 나는 소외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직원 걱정을 했다니, 참 후회된다. 옆 부서에 누군가가 고생을 하든 말든 별다른 관심이 없는 문화였다. 고생한 직원에게 물질적, 비물질적인 보상이 없는 회사,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노조, 문제의식이 없는 직원들, 챙겨주는 직원 하나 없는 상황. 그런 요인들이 결국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아직 퇴사 타이밍을 보고 있는 중이지만, 마음이 떠난 직원은 언젠가는 몸도 떠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직원이 많은 회사는 머지않아 몰락할 것이라 믿는다. 정 붙일 일터를 찾아 늘 방황하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인 것 같다. 적절한 보상과 대우, 주변인을 챙기는 팀워크 강한 조직, 말은 쉽지만 찾기는 정말 힘들다.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 찾아다닐 수밖에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