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울한 사람
코로나가 두려워 요즘은 밖에 잘 안 나간다. 외출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너무 안 나가니까 마음이 예민해지는 느낌이 든다. 괜히 사소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 같다. 덩달아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 잡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괜히 취업 고민도 해보고, 취업한 뒤에는 뭘 할지도 상상해보곤 한다. 고민이 많아지면 불안감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안한 요즘이다.
이렇듯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코로나 우울증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활동을 좋아하고 즐겼던 분들, 불황으로 인한 휴직이나 해고 때문에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특히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을 겪어본 경험이 있기에 현재의 상황이 참 우려스럽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때문에 심리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우울증이 확산될까 봐 그렇다.
나는 중학생 때 우울증을 처음으로 겪었다. 한창 학교생활에 걱정이 많았던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친구를 사귀고 함께 어울릴까에 관한 걱정을 주로 했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외로웠던 당시의 나는 왕따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별로 없었고, 친구는 많아야만 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곁에 친구들을 많이 두지 못했으면서 바보같이 착하기까지 해서, 기가 센 몇몇 애들에게 종종 무시를 당하곤 했었다. 자존심 센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인기가 많은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별다른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닌데 늘 여러 친구들이 옆에 있어줬다. 그에 더해, 그 친구를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와 정반대의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며 강한 자격지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난 노력해도 친구가 적은데, 노력해도 애들이 매일 무시하는데. 그 자격지심 때문에 방아쇠가 당겨져 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던 것 같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묵직한 돌이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 때로는 돌마저도 없는 채로 그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 우울감이 갑자기 밀려들어올 때 감정을 통제하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학교에서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고, 수업을 들어도, 친구들과 어울려도 재미가 없었고 기운도 나질 않았다. 머릿속엔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공허하고도 차가운 외침만 존재할 뿐이었다. 우울감 때문에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계속 멍 때리기만 했었다. 공부에는 아예 손을 뗐었다. 수업시간에 허공을 바라보며 딴생각만 했었고, 그 모습을 유심히 본 담임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왜 공부를 안 하냐고 걱정하시기도 했었다. 생각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장난은 괴롭힘으로 느껴졌고, 나를 향한 웃음과 미소는 비웃음으로 보였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다. 종종 갑자기 화가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친했던 친구들에게 툭하면 성질을 냈고, 때로는 말로, 때로는 주먹으로 자주 싸우곤 했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났고, 그런 식으로 나는 나 자신을 계속 고립시켰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해서, 다니던 학원을 전부 관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기에 혼자 공부해보겠다는 핑계를 댔었다.
우울감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제일 강하게 찾아왔다. 이유 없이 베갯잇을 적셨던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매일 밤 편하게 잠을 자질 못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욕하는 것 같은 소리가 자주 들렸었다. 툭하면 가위에 눌렸고, 깼다 잠에 들었다를 반복했었다. 그래서 늘 불을 켜고 잤었다. 불을 켜고 자야 그나마 잠에 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내 처지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슬퍼 보여서 내가 나 자신을 괴롭혔던 게 아닐까 싶다.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면 미래에 대한 이유 없고 기약도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었다. 지금 너무 우울한데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혹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무서웠던 생각은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정신과 꼬리표는 절대 달면 안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팽배했었기에 병원에 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조언을 해주며, 어느 정도 견뎌야 할 것이라고 말을 해주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내 미래가 칠흑 같은 암흑처럼 보였던 게 당연하다. '나는 지금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살기 싫어 죽겠는데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이 의문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고, 내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우울증은 그 후로 3년 정도 유지가 되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증세가 약해지기는 했지만, 참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었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의지를 강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울증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내 마음이 우울한 이유에 관해 끈질기게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이에 더해,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기도 했었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떠올려보며 어떤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회상했었다. 그리고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당시 상황, 상대방과의 평소 관계, 당시의 내 생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추론해냈다. 또한, 나의 행동에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회상했었고, 그런 반응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당시 상황, 상대방의 감정, 상대방 행동의 의미 등을 고려하여 추론해내려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장난을 쳐서 화를 낸 일이 있었다. 다른 애가 나를 놀릴 때 그 친구가 옆에서 같이 놀려서 그 친구에게 내가 화를 낸 것이 상황이고, 무시당한 것 같아 느낀 모멸감과 짜증이 내가 당시에 느꼈던 기분이다. 그 친구와는 평소에 가끔씩 서로 장난을 치는 관계였고, 친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따로 만나지 않는 등 관계 진전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었다. 친구가 놀렸을 당시에 나는 그 친구가 나와 더 친해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놀리는 것만 즐긴다고 생각했었다. 이것들을 종합해 추론해보면, 더욱 친해지고 싶은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 서운함이 쌓여있는 상태인데, 다른 애가 놀려서 스트레스받는 와중에 같이 놀리니까 강한 모멸감과 짜증을 느꼈다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당시에 그 친구는 내가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며 정말 슬픈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었다. 평소에 그 친구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때로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사과하는 것을 보니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느꼈던 감정은 슬픔과 서운함 등이었다. 이것들을 종합해 추론해보면, 자신의 마음을 못 알아주는 나에 대해 서운했거나, 관계가 앞으로 나빠질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슬퍼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을 것이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인간 심리에 관한 나만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우울증을 겪은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은 여러 사람과 사회적으로 어울리며 살아야 된다고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원래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친구가 항상 내 곁에 있기를 바랐고,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도, 나와 어울리고 있어도 외로움을 타곤 했었다. 만약 외로움이 해소되는 경험을 많이 겪을 수 있었고, 나를 향한 타인의 부정적인 반응을 적게 경험했더라면 외로움을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소심하고 여린 성격이었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능력도 부족했었다. 게다가 성격이 너무 착한 나머지, 호구 취급받기 일쑤였기에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는 경우도 잦았다. 친구들에게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경험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계속 누적되었고, 그런 경험을 겪을 때마다 좌절감, 창피함,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꾸준히 쌓여갔다. 그러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때에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완벽한 존재가 내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결국 폭발한 것이다. 마음이 요동치며 원활하게 감정 조절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우울감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다면 감정조절을 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더 이상 조절하기 힘들어질 때 우울증, 조울증 등의 기분장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우울한 감정을 일으키는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인기남'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고, 실제로 실현하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내가 고안해낸 해결책은 내 머릿속에 박혀있던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강하게 원했던 이상을 부정하고, 그 반대의 것에 관심을 기울이며 긍정적인 점을 찾으려 했다. 즉, 인기남이 되려 했던 것을 포기하고, 친구가 적거나 혼자일 때의 좋은 점을 탐구한 것이다. 그러자 이상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생각의 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인내심도 참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덕분에 내가 정말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친구가 많아야만 행복한 줄 알았는데, 친구가 많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 또 친구가 적거나 혼자인 경우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가 많으면 그만큼 신경 써야 할 사람도 많아져 피곤해질 수 있고, 현실적으로 돈도 많이 필요하다. 반대로 친구가 적으면 신경 쓸 일도 그만큼 줄어들어 편하고, 소수의 소중한 사람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인간관계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 물론 관계에 투자하는 데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세상만사엔 장단점이 다 있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유연하게 사고하는 법을 혼자서 조금씩 터득했고, 그러면서 우울증도 조금씩 옅어졌다.
우울증을 겪은 일은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까지도 그늘이 남아있다. 마음의 상처는 피부의 흉터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연약하고, 그래서 평상시에 꾸준히 감정을 관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연약하기 때문에 또한 유연하기도 하다. 유연하기 때문에 의외로 빨리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사고방식을 조금만 바꿔도, 생각의 폭을 조금만 넓혀도 불만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내 성격과 내가 처한 환경에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쓸데없는 불행을 현명하게 피해 갈 수도 있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다채로운 사람.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다.
인생이 너무 내 맘대로 안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대신 그 '맘'을 바꾸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사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 멍한 상태로 지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정말 죽을 것만 같고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을 관두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딱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해법은 등잔 밑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