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으면 운전 못해

8. 겁 많은 사람

by 빨간모자

난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운전자이다.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후, 그러니까 20대 중반이 되어서 땄으니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늦게 딴 이유는 따지자면 여러 개지만 결국엔 겁이 많아서였다. 거친 성격의 운전학원 강사에게 혼나면서 배우는 것도 무서웠고, 몸 쓰는 일에 재능이 없어서 지레 겁을 먹기도 했었다. 운전을 하고 다닐 만한 일이 없었던 상황도 한 몫했었다.


그러다가 취업을 앞둔 고학년이 되었고, 남자가 회사생활을 시작하는데 면허가 없으면 회사 동료 모두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자신 없는 분야를 반자발적으로 새로 시작해본다는 사실이 두렵고 불편하게 다가왔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교육과정은 상당히 수월했다. 휴학을 한 직후라 시간이 많아서 연습, 시험을 연달아 진행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통과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2주 만에 면허를 손에 넣게 됐었다. 한 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


실질적인 운전연습은 더 무섭게 다가왔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차 뒤에 붙이고 아버지를 옆에 앉힌 채 연습을 해야 했는데, 내가 혼자 알아서 차를 조작해야 한다는 게 무섭게 느껴졌다. 세상 사람들은 냉정하고, 도로 위는 험하다는 평소 생각을 이제는 직접 느껴볼 수 있겠다는 두려움은 운전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운전연습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를 주저했었다.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 평소의 말이나 행동에 배여 나오는지, 어느 날 차 안에서, 아버지와 내가 운전 얘기를 할 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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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으면 운전 못해


물론 맞는 말이라고 공감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운전대를 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씩 문득, 공공기관 같이 보수적인 곳에서는 운전을 못하든 잘하든 막내가 무조건 운전을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이 떠오르곤 했었다. 공공기관 취업을 목표로 삼은 취준생이니,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 비해서는 별거 아닌 운전연습쯤은 이겨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 감정에 이끌려 억지로 운전석에 몇 번 앉아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시 외곽에 만들어진,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뉴타운은 거주 인구가 적어서 차가 많지 않다. 특히 뉴타운 안에 있는 공단 같은 경우에는 평일 업무 시간이나 주말에는 차가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초보운전자들이 연습하기 딱 좋다. 아버지가 동승한 상태로, 한적한 공단에서 차를 좌회전 우회전하면서 감을 느꼈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밟아보며 어느 정도 강도로 밟아야겠다고 인식을 했고, 좁은 공간에서 후진과 U턴을 해보며 공간감각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역시 예상대로 운전은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감각이 좋아야 운전은 잘할 수 있고, 그 감각은 연습으로만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겁이 나더라도 연습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 후로 인턴에 알바에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한동안 운전연습을 따로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저번 달과 이번 달에 제대로 된 주행 연습을 해볼 수 있었다. 시내주행도 해보고, 이웃 도시를 찍고 오기 위해 고속화도로도 달려보고, 야간 주행도 해보고, 심지어 어쩌다 보니 비자발적으로, 국지성 폭우가 내리는 날에 주행을 해보기도 했었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차가 있는지 못 본 채 차선 변경을 하다가 뒤차의 빵빵을 호되게 당해보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아주 잠깐 급발진을 해버린 적도 있었다. 비가 엄청 내렸던 날에는 잘 보이지도 않고 브레이크도 잘 안 먹었는데, 고속화도로까지 달려야 했기에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겁이 자연스럽게 났었고, 손에 땀이 나서 핸들이 다 젖을 정도였었다. 실수를 해도 아버지는 "원래 운전 처음 배울 때는 다 그런 거다" 라며 크게 개의치 않으셨다. 긴장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겁이 나도 운전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앞으로의 직장생활을 위해선, 삶을 원활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힘들겠지만 산을 넘어야 한다. 빨리빨리가 운전에 배어있고, 깜빡이를 켜도 양보 안 해주는 경우가 많고, 클랙슨과 쌍라이트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거친 도로 문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세상에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야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아쉬운 말을 타인에게 해야 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 현대사회이고, 원하는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0에 수렴하게 된다. 겁이 나고, 불안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하기 싫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강제적으로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도전해보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상황 때문에 사회생활이 어렵고 힘든 게 아닐까. 그래도 희망을 가질 만하다. 내가 운전학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막상 해봤는데 잘할 수도 있으니까, 본인이 몰랐던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세상에 존재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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