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팠던 사람과 아픈 사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몸이 불편한 분들을 의외로 자주 목격하게 된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 대신에 거주지역에 돌아다니다 보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어르신부터 눈이 잘 안 보여 지팡이를 짚으며 다니는 청년까지 다양하게 마주치곤 한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자주 있어도, 일상생활을 같이 하거나, 가깝게 어울릴 일은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많지 않다. 의료 업계, 보건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거나 공무원인 경우가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분들을 친밀하게 접할 기회는 흔치 않은 편이다.
나는 몸이 불편한 한 형과 군생활을 같이 한 경험이 있다. 인생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지만, 어쩌다 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A는 어렸을 때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었고, 그 후부터 후유증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을 겪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골반을 중심으로 느닷없이 통증을 느끼곤 했었다. 비가 오는 날에 아파하기도 했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나서 아파하기도 했다. 몸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하거나, 높은 습도처럼 몸에 어떠한 영향을 가하는 환경이 처해지면 강한 통증을 호소했다. 누워서 신음을 내며 아파할 정도로 통증의 정도는 심해 보였고, 불규칙적이어서 패턴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때로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에 입원해 강한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는 병이 아니었다. 완치가 불가능해서 주기적인 물리치료와 컨디션 조절을 통해 통증을 관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군입대 전까지는 엄청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관리를 잘해서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무리한 운동만 하지 않으면 통증의 정도가 강하지 않아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병무청 신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CRPS는 법적으로 병역 처분 '면제'에 해당하는 병이 아니다.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CRPS 진단서를 제출해도 병역법에 관련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면제'를 시켜주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 소견이나, 몸 상태를 봐서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군생활이 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매번 '재검' 처분을 받았고, 그렇게 1년씩 군 입대가 몇 년 동안 계속 미루어졌다.
가끔씩 CRPS 사례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지긴 했지만, 면제 처분을 위한 병역법 개정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계속 기약 없이 미루어지다가, 이렇게 계속 입대를 미루며 불안하게 살 수는 없다고 A는 생각했고, 아픈데도 불구하고 입대를 하겠다고 신검 과정에서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A는 입대를 하게 되었다. 많은 배려를 받으며 훈련소 과정을 통과했고, 결국 자대 배치를 받아 나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서 군생활을 하겠다는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자신이 부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군생활에 대한 태도 하나만큼은 명품 군인이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못했다. 조절되지 않는 통증은 수시로, 갑자기 A를 괴롭혔고, 일상적인 부대 생활조차도 힘들게 만들었다. 통증 때문에 침대에서 앓아눕는 경우가 잦았고, 때로는 군 병원으로 급하게 실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훈련에서는 쉬운 임무만 맡거나 아예 열외가 되기도 했었다. 일반 병사들은 받지 못하는 특혜를 자주 받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자꾸 만들어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A를 안 좋게 보았다. 특히 같은 공간에서 같이 근무하는 선임들과 간부들이 제일 싫어했다. 자신이 속해있는 부대의 간부들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A는 얼마 안돼서 바로 관심사병이 되었다. 아니, 애초에 배치받자마자 관심사병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르겠다.
A는 아픈데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경계, 불침번 등 신체적으로 무리가 갈 수 있는 근무들에서 충분히 빠질 수 있었지만, 일단 한 번씩 시도해보고, 가능한 근무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수행하겠다고 주장했다. 계속 서있어야 하는 근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앉아서 하는 경계근무나 불침번은 가능했고, 다른 이들처럼 성실하게 근무를 섰다. 훈련도 신체적으로 가능한 경우라면 최대한 참여했고, 항상 진지하게 임했다. 일상적인 과업도 힘든 일이 아니어서 충분히 수행이 가능했다. 가끔씩 통증이 심해서 아예 열외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문제는 다른 이들의 시선과 말도 안 되는 소문이었다. 꾀병이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부대 전체에 퍼졌고, 선후임, 동기 가릴 것 없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기 편하자고 아픈 척하는 거다, 힘든 일 해야 할 때만 아프다고 하지 않냐, 남들 볼 때는 아프다고 연기하다가 혼자 있을 때는 몰래 웃는다.' 등등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다 보니, 선임들과 간부들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같이 근무하는 간부는 작은 실수에도 '일을 이 따위밖에 못하냐'며 일부러 폭언, 욕설을 날렸다. 그 옆에서 같이 근무하는 선임은 조롱과 비난을 습관적으로 행했다. 따로 불러 '너 때문에 나도 혼나지 않았냐, 제대로 안 할 거냐' 등의 말들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비아냥거렸다. 때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면 통증을 호소한다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무거운 물건을 들게 하기도 했다. A는 늘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뭐라 항의할 상황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크게 낼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본인이 제일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군 생활을 절반 넘게 한 어느 날, 어두운 저녁에 비가 내려 미끄러운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졌다. 발목뼈에 금이 가 깁스를 했는데, 의무대에서 깁스를 불안정하게 채운 탓에 계속해서 다친 부위에 자극이 가해졌다. 그러다 허리 쪽에 있던 CRPS가 발목으로 전이되었고,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그 전에는 두 발로 걸을 수 있었지만, 발목을 다친 후부터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통증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고, 그에 더해 발목이 새하얘질 정도로 차가워지는 증상까지 추가되었다.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는 횟수가 더 많아졌고, 통증이 너무 심해 졸도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근무나 훈련 열외도 더 잦아지게 되었고, 일과에도 더욱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군의관은 국군 수도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A는 입원 치료를 받다가 의병 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갔고,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임상연구 치료와 주기적인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A가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옆에서 바라보며 평소에 많은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놀라기도 했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군생활을 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폭언 욕설을 하며 교묘하게 괴롭히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란 존재가 이기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소문을 듣고 단정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모습은 무심하면서 편협해 보이기까지 했다. 희귀병, 난치병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병역 체계,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부대 근무 환경 등이 근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나에겐 수준 낮은 인성도 문제로 보였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몸이 약하다고 꼭 괴롭힐 필요가 있었을까? 자기와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뒤에서 함부로 평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모두에게 그럴 자격은 없었다. 대신, 서로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며 더불어 지낼 자격은 있었다. 그를 직접적으로 괴롭혔던 선임과 간부들, 그를 뒤에서 욕했던 모든 병사들, 그를 알게 모르게 귀찮아하고 모른척했던 소속 부대 간부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자격만 행사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A의 부모님이 면회를 오셔서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A도 생각날 때마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전역한 후에도 이어졌다. 내가 없었다면 비교적 멀쩡하게 전역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A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나. 사실 난 그에게 무슨 대단한 도움을 준 건 아니다. 단지 평소에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의 특별한 상황을 이해해준 것. 근거 없는 소문에 현혹되지 않고 뒤에서 비난하지 않은 것. 이유 없이 미워하고 괴롭히지 않은 것. 아프다고 할 때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 준 것. 단지 그뿐이었다. 내가 했던 행동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런 행태에 실망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아서 그랬을까. 군대 바깥에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아픈 사람의 절망과 고통은 아파봤던 사람이 안다. 아픈 사람의 곁에는 가족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아파본 사람은 잘 안다. 우울증을 심하게 겪어봐서, 아픈 사람의 서러움을 잘 알아서 A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갔다.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얼마나 아팠을지는 상상해본들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대신 그의 마음은 조금은 공감이 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암울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망을 빌었을까.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