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무라면 Sep 27. 2018

Can I Özil You?

독일 축구 선수 메수트 외질 이야기


그라운드 위에서 공 하나를 놓고,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축구의 본질, 나아가 스포츠의 본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 본질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기나 한 건가? 정치와 혐오가 한 선수를 조국의 팀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다운 꽃들이 부디 시들어도 좋으니,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꺾지 말아달라는 애틋한 바람을 되새길 뿐이었다. ...(중략)... 인간은 꽃이 아니라고, 그러니 아름답게 시들어 가시라고, 행여 꽃잎이 떨어져도, 그 모습마저 아름다울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최민석 소설가의 에세이 「철없는 꽃」 中 에서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10번의 흰 유니폼을 입은 그를 볼 수 없는 것인가?


   메수트 외질(Mesut Özil)이란 축구 선수가 있다. 국적은 독일. 제법 큰 키, 가녀린 체격, 툭 튀어나온 눈, 거무스름한 다크써클, 그리고 의욕 없는 표정까지. 축구에 문외한인 누군가가 보면 축구 선수라 말하기 힘든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에서 열린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그는 신성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축구란 스포츠는 22명이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2002년 한일 월드컵 준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못낸 독일이었다. 심지어 2006년 자국 월드컵에서 4위를 했지만, 홈 이점을 고려하면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2010년도에도 불운의 그림자가 독일에 드리웠다. 정신적 지주이자 주장인 미드필더 미하엘 발락이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던 것이다.


   그는 독일의 공격형 미드필더 주전이었다. 당시 나이 22세. 월드컵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축구팬의 가슴에 새겨버린다. 신성 메수트 외질. 강호 잉글랜드와의 16강전은 독일 축구 역사의 큰 획이었다. 그는 호화 수비진을 초토화 시켰고, 한골을 제외한 모든 골이 그의 발끝을 거쳤다. 결과는 4:1 독일의 대승. 남아공 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였다. 그리고 명실 공히 독일의 에이스가 된다.


독일 축구 대표팀을 12년 째 이끄는 뢰브 감독은 세계적 선수가 즐비한 독일팀에서 가장 먼저 외질의 포지션을 박아놓고 전술을 짠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10년은 독일 축구의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투박한 전차군단이 진화했다. 이름 하여 신형엔진을 단 전차군단. 강인한 체력과 몸싸움, 조직력으로 대변되던 독일 축구는 세밀하고 유기적인 창의성을 장착했다. 그 중심엔 외질이 있었다. 힘보다는 부드러움, 체력보다는 기술, 약속된 플레이보다는 번득이는 천재적인 패스를 갖춘 선수. 그는 신형전차의 엔진오일이었고, 독일 축구는 부활했다. 그리고 당해 월드컵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다. 팀 구성원의 변화도 있었다. 오로지 백인밖에 없던 팀에 유색인종이 포함되었고, 그 중 한명이 외질이었다. 4년 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마침내 독일은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그러나 독일은 2018년 월드컵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16강 탈락의 수모를 겪는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자존심 강한 어느 독일인들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팀의 에이스인 외질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백인 게르만 인종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중동계 무슬림 이민자 출신이었다.


   보수적인 축구인들과 정치인들에게 외질은 이미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터키 이민자 2세대인 그가 축구명가 독일의 에이스인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월드컵 직전 사건이 터졌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SNS 상에 올라온 것이다. 에르도안은 독재자라 비판받는 인물이었고, 그가 터키 대통령과 웃으며 사진을 찍은 행위는 많은 오해를 불렀으며 노골적인 비판을 받았다.


7월 23일, 외질은 담화문을 통해 스스로 독일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담화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조국은 독일이며, 독일 국민이지만, 뿌리는 명백히 터키이다. 때문에 독일과 터키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부모님과 조상의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자신에게는 ‘누가’ 대통령이었는지 보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대표팀이 승리하면 자신은 독일인이었지만, 패배하면 타민족 이민자였다고.


   그는 완벽한 선수는 아니다. 단점이 뚜렷하며 한계 역시 명확하다. 맹렬한 기세, 강력한 피지컬, 견고한 수비를 그에게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유려한 테크닉, 번득이는 창의력, 그리고 경기를 단번에 결정지을 수 있는 환상적인 패스를 갖춘 그를 제외하면 이 시대 최고의 미드필더를 논할 수 없다.





   그는 희생되었다. 야심한 밤, ‘승리하면 독일인, 패배하면 이민자였다’고 쓸쓸히 읊조리는 그의 고백에 마음이 아려온다. 그라운드 위에서 공 하나를 놓고,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는 축구의 본질, 나아가 스포츠의 본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 본질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기나 한 건가? 정치와 혐오가 한 선수를 조국의 팀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인가?


   다음의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동시에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던 한명의 팬으로서 그가 선택한 길을 응원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꽃들이 부디 시들어도 좋으니,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꺾지 말아달라는 애틋한 바람을 되새길 뿐이었다. (중략) 인간은 꽃이 아니라고, 그러니 아름답게 시들어 가시라고, 행여 꽃잎이 떨어져도, 그 모습마저 아름다울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그대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스스로를 놓지 말아 달라. 그대는 여전히 이 시대 최고의 선수다.










* 외질은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이며, 지금까지 거친 모든 주요 대회에서 도움왕을 차지했다. 독일, 스페인, 영국리그, 챔피언스리그, 유로, 월드컵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 그의 어시스트 능력에 감명받은 한 축구팬이 그의 도움능력을 이름에 빗대어 신조어를 창조한다.


                     Can I Özil you?

                    (도와드릴까요?)



Oxford Dictionary Ozil (!?)


*** 축구 황제 펠레 이후 등번호 10번은 관행적으로 그 팀의 에이스에게 헌정하는 등번호이다.

**** 독일 대표팀의 유니폼은 흰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트루먼 쇼」 알을 깨야 비로소 얻는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