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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08. 2021

육아도 조기 퇴근이 되나요?

럭키한 육퇴의 순간, 그리고 시작되는 나만의 생활


   육아를 하며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육퇴(육아 퇴근)'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 잠잠이와 함께하는 나의 하루는 꽤나 계획적이다.


   오전 7시 반에 분유 먹이고 아침잠 보충 - 11시 반쯤 함께 식탁에 앉아 과일을 곁들인 프렌치토스트, 팬케이크, 시리얼 등으로 가족 식사 - 잠잠이 컨디션에 따라 낮잠 한두 시간 - 3시쯤 간단한 식사 혹은 간식 - 5시 반에 함께 식탁에 앉아 오트밀, 죽, 볶음밥, 파스타 등으로 가족 식사 - 7시 반이면 어김없이 거실 소등 - 잠을 유도하는 자장가나 클래식 뮤직박스 재생 - 8시경 잠잠이가 졸린 눈을 비비기 시작하면 분유 대령


   분유를 먹던 잠잠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다가 남은 분유를 마저 끝마치지 못하고 잠에 빠지면 "럭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듯 나의 하루하루는 럭키한 육퇴를 향해 달리는 전략 싸움이라고나 할 수 있다. 모든 엄마들이 나와 비슷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육아 동지니까.


    그런데 내 전략이 항상 먹히는 것만은 아니다. 육아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이앓이 때문에 아기가 잠을 못 이룰 수도, 날이 덥거나 추워서 자다가 울기도, 아빠와의 목욕 시간이 너무 즐거웠던 나머지 하이퍼 상태가 됐을 수도, 평소보다 낮잠을 조금 길게 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변수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엄마의 럭키한 육퇴는 물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아기가 잠에 드는 시간은 엄마의 노력에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아기가 예상 시간에 잠을 자 준다면 실로 럭키한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하는 주에는 육퇴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진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번갈아가며 아기를 재울 수라도 있지만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없으면 아기 안고 서성이기, 아기 흔들어 재우기, 자장가 혹은 '쉬-' 소리로 진정시키기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아기가 품에서 잠에 들었다고 게임 오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정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 아기의 등 센서가 작동하는가. Yes or No

    장판에 착 붙어버린 발바닥. 아기를 깨우지 않고 뗄 수 있는가. Yes or No

    방문을 끼익 소리 내지 않고 잘 닫을 수 있는가. Yes or No

    아기를 재우는 사이 나까지 잠에 빠진 건 아닌가. Yes or No


    이렇게 수많은 예스 오얼 노우 게임을 거쳐 무사히 소파에 앉고 나서야 진정한 육퇴를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회사 퇴근 후에도 회식을 가거나, 주말에 오는 상사의 업무 지시 메시지에 '넵!'과 같은 영혼 없는 답장을 보내야 하는 순간이 육퇴 후에도 존재한다. 아기가 느닷없이 깨서 우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 건 야근 확정인 거고. 육퇴 후 업무의 연장선이라면 어질러진 장난감 정리하기, 분유병 씻기, 하루 종일 찍은 사진 추리기, SNS에 사진 업로드하기, 가족들과 사진 공유하기, 육아 동지 엄마들과 카톡으로 수다 떨기, 밀린 육아 일기 쓰기, 이유식 만들어 소분하기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육퇴가 진정한 육퇴가 아니랄까. 그나마 제대로 된 육퇴라면 드라마 보며 야식 먹기, 그림 그리기나 책 읽기 등 취미생활 하기, 전화로 수다 떨기, 남편과 술잔 기울이기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이 마저도 12시 이전에는 끝내야 한다. 우리에겐 내일의 육아가 있으니까.


    나는 종종 육퇴 후 블로그에 육아 일기를 쓰거나 낮동안 머리로만 떠올렸던 창작 동화를 노트에 손으로 옮겨 쓰곤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육아 일기는 일이 주 간격으로 한 번씩 작성하고, 창작 동화는 생각나는 대로 아이디어든 완성된 스토리든 글로 남긴다. 그러기를 일 년. 임신 시절부터 시작한 임신과 육아 일기가 100편 넘게 쌓였다. 창작 동화는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이제 한 번쯤은 세상에 내보일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동화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출판사에 연락을 해봐야 하나,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하나, 독립 출판을 해야 하나, <구름빵>처럼 빵 뜨면 어쩌지 하며 김칫국을 마시다가 브런치가 떠올랐다. 그래, 브런치만큼 내 글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플랫폼도 없지. 육퇴 후에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작가의 서랍에 육아 에세이와 창작 동화를 번갈아 가며 쌓아가는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늦어도 12시에 잠자리에 들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그래서 말인데 육아도 조기퇴근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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