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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16. 2021

그래, 출산은 동화보단 에세이더라 (1)

호주에서 유도분만으로 출산하기

    39주 2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새벽 3시경, 태동이 조금 줄어든 거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별 걱정 안 하고 넘어갔을 텐데. 임산부 카페에서 게시글들을 너무 열심히 읽었나 보다. 물론 작은 일이라고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평소에는 별 신경 안 썼을 작은 일에도 모든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GP (호주의 일반의) 예약이 되어있던 터라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단순히 아기가 잠을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벽 세 시까지 깨어있던 적이 별로 없어서 태동을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RPA 출산병원으로 가세요.



    오전 10시. GP가 걱정 반 짜증 반 섞인 목소리로 당장 출산 예정 병원인 RPA(Royal Prince Alfred Hospital, 로열 프린스 알프레드 공립 병원)로 가라고 했다. 태동이 줄어든 경우, 대부분 false alarm(오경보)이지만 만삭 중에도 아기가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태동이 줄었을 경우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급히 레퍼럴 레터를 써줬다. 밥 먹고 놀다가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당장 RPA delivery ward (출산 병동)로 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전 11시, RPA women and babies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리셉션에 레퍼럴 레터를 보여주며 delivery ward(출산 병동)로 간다고 말했더니 옐로 카드(임산부 카드)를 확인하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신생아 네 명을 보았는데 그중에는 쌍둥이도 있었다. 이 날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만 18명이었다고 한다. 바퀴 달린 아기 침대를 밀며 퇴원하는 산모들은 짧은 원피스 하나만 걸친 채 병원 로비를 잘만 걸어다녔다. 요 며칠 새에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호주인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서양은 산모의 골반이 넓고 아기의 머리가 작아서 회복이 빠르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미드와이프가 나와 남편을 병실로 안내했다. 놀랍게도 남편도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병원 진료 때마다 혼자 들어가야 했는데 말이다. 아기의 심박동 검사를 위해 배에 모니터를 달았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아기의 심박동은 잘 뛰고 있었다. 초음파 결과를 보고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했냐고 묻길래 아직이라고 했더니 치즈 샌드위치와 요플레 등을 가져다줬다. 치즈 샌드위치는 흰 샌드위치 빵에 버터를 바르고 치즈 한 장 넣은 게 다였다.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는데. 출산 후에도 호주는 샌드위치를 준다던데, 이런 걸 가져다 주려는 건가 걱정이 앞섰다.



    병원에서 가장 빨리 잡아준 초음파 예약이 2시였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입장 불가라 나 혼자 들어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동안 앤디는 로비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해야 할 순간, 배우자가 가장 절실한 순간에 혼자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야속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초음파 검사 결과는 양수도 충분하고 아기도 문제없어 보인다고 했다. 원래대로면 한 달 전에 받은 초음파 검사가 출산 전 마지막 검사였을텐데, 이렇게나마 초음파를 한 번 더 보게 되어 좋았다. 지난번 초음파 결과 2.9kg이었던 아기는 한 달만에 3.6kg가 되었다. 출산이 정말 눈앞으로 다가왔다.






    오후 3시쯤. Delivery ward로 돌아 가 미드와이프를 만났다. 남자 미드와이프였는데 내진을 해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부모 수업을 들을 때 강사가 말하길 임산부는 내진을 거부할 수 있고, 남자 미드와이프가 불편할 경우 여자 미드와이프로 교체를 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진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남자 미드와이프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내진 결과 자궁 문이 1cm에서 2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숫자 1에서 10까지로 봤을 때 아기의 태동이 어느 정도로 줄었다고 느꼈는지, 주말에 비해 태동의 강도와 횟수가 어떻게 줄었는지를 물었다. 횟수와 강도 둘 다 조금씩 줄어든 거 같긴 한데 평소에 의식을 잘 안 하고 있어서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원하면 유도분만을 통해서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남편과 상의해보라며 자리를 비워줬다. 유도분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남편은 자신의 의사보다 내 의사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정말로 아기한테 문제가 있어서 태동이 줄어든 거였다면 지금 건강한 상태에서 낳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음파 결과 잠잠이가 3.6kg이었으니 일주일이나 그 후에는 더 커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잠잠이가 현 주수보다 성장이 조금씩 빨라서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삭이 되니까 몸도 무겁고, 진통이 왔을 때 남편이 집에 없으면 어쩌지 걱정하는 것보다는 유도분만으로 낳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차피 할 출산, 예정일보다 1주일 빠르지만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미드와이프에게 유도분만 의사를 밝혔다. 미드와이프도 지금 아기를 낳는 게 아기 건강에도 좋을 거 같다며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5시 30분으로 침대를 부킹 해줄 테니 필요한 짐을 챙겨 다시 오라고 했다. 입원까지 2시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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