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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15. 2021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

두 번째 창작동화

 은이는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깜깜한 거리보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더 어두워요. 엄마를 꼭 끌어안아 보지만 무서운 마음은 사라지지 앉아요.


 은이가 다시 잠에서 깼을 땐 할머니 댁이었어요. 할머니가 은이에게 비눗방울 장난감을 남기셨대요. 할머니가 직접 만든 비눗방울은 어느 비눗방울보다도 크고 오래갔어요.



 

할머니와 자주 놀던 뒤뜰에는 토끼풀이 가득 피어있어요. 할머니는 토끼풀로 은이에게 반지도 만들어 주시고 팔찌도 만들어 주시곤 했지요. 은이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비눗방울을 불었어요.


 후, 후, 후



 작고 동그란 비눗방울 떼가 이리 빙글 저리 빙글.

 토끼풀 위에서 톡.

 바람에 나부끼다 톡.

 방울끼리 톡.


 톡, 톡, 톡




 이번엔 길게, 길게, 더 길게

 후우-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오른 비눗방울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어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다가오고 있어!"

 비눗방울 요정들이 외쳤어요.




 은이가 토끼 눈을 하고 비눗방울을 들여다봤어요. 비눗방울 안에는 날개 달린 비눗방울 요정들이 분주하게 떠다니고 있었어요.


  꽃술로 비눗방울 막에 비눗물을 덧칠하는 요정.

  비눗방울 속에 비친 꽃잎의 뾰족한 끄트머리를 둥글게 잘라내는 요정.

 비눗방울 꽃에 맺힌 비눗물을 몸 구석구석 바르는 요정.

 비눗방울을 던지며 장난치는 요정.

 비눗방울 위에서 잠을 자는 요정.


 비눗방울 요정들은 이따금씩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다가오고 있어!'라고 외쳤답니다.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



 은이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비눗방울 요정들이 겁을 먹고 말았어요.


 "우리가 보이나 봐!"

 "비눗방울을 톡 하고 터뜨릴 건가 봐!"

 "우리 모두 터지고 말 거야!"


 "아니야, 터뜨리지 않을 거야!"

 은이가 손사래를 쳤어요. 그 바람에 비눗방울이 크게 흔들렸어요.


 꽃술을 든 비눗방울 요정은 재빨리 비눗방울 막에 비눗물로 덧칠을 했어요.


 "이제 안전해." 꽃술은 든 비눗방울 요정이 말했어요.


 "네 손바람 때문에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벌써 올 뻔했잖아." 비눗방울 위에서 낮잠을 자던 요정이 입을 삐쭉거리고는 다시 잠을 청했어요.


 은이는 양 손을 등 뒤로 넘겼어요. 비눗방울 요정들은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오고 있어'라고 외치면서 말이에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뭐야?" 은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비눗방울 요정들이 대답했어요.


 "비눗방울은 언제든 톡 하고 터질 수 있지."

 "그게 언제인지 알면 우리가 이토록 분주하지도 않았을 텐데."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은 아무도 몰라."




 은이는 비눗방울 요정들에게 궁금한 게 아주 많았어요. 


 "왜 꽃 잎을 자르는 거야?"

 "뾰족한 꽃 잎에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예정보다 먼저 올까 봐."


 "왜 비눗물을 덧칠하는 거야?"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왔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고."


 "왜 혼자만 잠을 자고 있는 거야?"

 "이제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와도 괜찮으니까."


 "언제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질지도 모르는데 무섭지 않아?"

 "무서워만 하기에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은 금방 오는 걸."


 은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어요. 이번에는 비눗방울 요정들이 은이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우리를 볼 수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비눗방울은 네가 직접 만든 거야?"

 "아니. 우리 할머니가."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어?"

 "엄마가 그러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은이는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뒤뜰에서 같이 비눗방울을 불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비눗방울을 터뜨렸을 테지요. 손과 목에는 할머니가 토끼풀로 만든 반지와 목걸이를 걸고서 말이에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면 비눗방울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도 모두 사라져 없어질 것만 같았어요. 은이의 두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어요. 은이는 으앙 하고 울고 말았어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오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 거야. 사라지는 건 분명 무서운 일이지만 울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일 거야. 할머니도 네가 있어 큰 위안이 됐을 거야." 비눗방울 요정이 말했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은이의 물음에 비눗방울 요정들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때, 비눗방울 요정들이 입을 모아 외쳤어요.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날이 왔어!" 


 비눗방울은 순식간에 톡 하고 터지고 말았어요. 작은 비누 거품이 은이의 손바닥 위로 토도독 튀었어요. 은이는 사그라지는 비누 거품을 보면서 그 어느 날 보았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은이를 위해 비눗물을 만들고 있던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톡 하고 터져있었어요.




그림. 리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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