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이의 태동이 줄어들어 초음파 검사를 했다. 별 이상은 없었지만 유도분만으로 출산하기로 했다. 입원까지 2시간가량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 필요한 물품을 챙겨 오기로 했다. 미리 출산 가방을 준비해놨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챙길 물품은 몇 개 없었다. 휴대폰 충전기, 여분 속옷, 그리고 신고 갈 슬리퍼 정도였다.
유도분만은 앞두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홀가분했다. 차에 타거나 내릴 때, 침대에 눕거나 일어날 때, 변기에 앉거나 일어날 때 더 이상 낑낑대지 않아도 된다. 새벽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할 일도 없어진다. 임신 내내 날 괴롭히던 눈 다래끼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드디어 잠잠이를 만나게 된다! 출산 후에 펼쳐질 행복한 나날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말이다. 어찌 됐든 걱정했던 것처럼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에 몸부림치며 응급실로 향하는 것보다는 나은 순간이었다. 굳이 합리화를 하자면 말이다.
병원 5층에 있는 East 1 병동으로 안내를 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병실은 2인실이었지만 침대 사이가 커튼으로 분리되어있어서 옆 산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화 내용으로 짐작하건대 경산모였으며, 남편이 함께 있지 않았지만 혼자서도 굉장히 침착했다. 미드와이프가 들어와 7시쯤 의사가 올 거라고 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의사를 기다렸다. 그동안 여러 번 미드와이프들이 들어와 혈압을 재고 체온을 쟀다.
7시쯤 온다던 의사는 9시 반이 다 되어서 왔다. 내진을 해보더니 1cm 정도 열렸다고 했다. 2cm까지는 열려야 테이프 (유도제)를 넣을 수 있는데 힘으로 열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고, 테이프를 넣었다. 의사는 양수가 터지면 알려달라며 나갔다. 내진한 후에 피가 꽤 많이 나왔다. 아프기보다 불편했다. 계속해서 침대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왼쪽 손목에 Cannuala injection(캐뉼라 삽관 주입)을 했다. 바늘이 생각보다 크고 두꺼워서 놀랐다. 평소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것도 잘 보는 나지만 이번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삽입관 주변으로 투명 압박밴드를 붙였기 때문에 샤워를 해도 괜찮다고 했다.
밤 11시가 되어서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인실이기 때문에 남편이 함께 머무르면 안 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찍 오기로 했다.
미드와이프는 호출한다고 바로 오지 않는다. 호출하고 나서 호출벨이 10분쯤 울려야 온다. 뭘 부탁해도 한참 후에나 오거나, 아니면 오지 않는다. 미드와이프의 수는 정해져 있고, 산모가 나 하나는 아닐 테니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이 좋다.
유도제와 팔에 꽂은 삽관 때문에 샤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샤워하니 한결 개운했다.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이고 유튜브에서 본 대로 호흡 연습을 했다. 우아한 출산으로 잠잠이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다.
2020년 09월 23일, 임신 39주 3일째.
자정부터 가진통이 시작됐다. 아프진 않았지만 자궁 수축이 계속되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유튜브에서 본 호흡 법대로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부터 해놔야 진진통에 호흡을 잘할 거라는 기대감으로.
한 시간 후부터 가진통이 규칙적으로 느껴졌다. 가진통도 규칙적이면 체크를 하라고 해서 진통 어플을 켰다. 배가 슬슬 뭉쳤다가 나도 모르게 풀어졌다 하던 가진통이 이제는 수축할 때와 수축하지 않을 때의 경계가 확실해졌다. 어플에 진통을 체크하기가 수월해졌다. 새벽 4시까지 계속해서 체크를 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바람에 체크를 놓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축 간격이 4-5분 간격에서 3-4분 간격으로 줄어들었다.
새벽 4시경,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일어나는데 허벅지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유도제로 넣은 테이프의 끝이 약 10cm가량 나와있었다. 미드와이프에게 알리니, 완전히 나온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했다.
가진통에서 진진통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아랫배에 생리통 같은 통증이 들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먹었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참을만한 고통이었다. 계속해서 진통 주기를 체크했다. 그 바람에 잠은 두어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오전 6시 반, 남편이 아침 일찍 도착했다. 밤사이 혼자 병실에서 외로웠나 보다. 남편을 보자 눈물이 찔끔 났다. 고통이 심하진 않았어도 혼자 진통하는 것과 남편이 옆에 있을 때 진통하는 건 천지차이였다. 혼자일 때보다 확실히 힘이 됐다. 그런데 점차 진통의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오전 9시, 의사가 내진을 했다. 아직 3cm 정도밖에 열리지 않았지만 자궁문을 추가로 열기 위해 balloon 삽입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끝이 나와있던 테이프 유도제를 마저 제거했다. 고통이 지금보다는 줄어들을 거라고 했지만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진정이 된다길래 샤워를 했다. 하지만 밑이 빠질듯한 고통과 허리가 끊어질 거 같은 아픔이 계속됐다. 샤워 중간중간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했다. 간신히 샤워를 마친 후에는 이미 몸의 물기를 닦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이 대신 물기를 닦아내고 병원 가운을 입혀줬다.
이쯤 되자 내가 과연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직 진진통의 끝도 안 본 거 같은데 이렇게 아프면 참을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제왕 절개하면 마취했다 깨어나면 끝이라는데, 그런데 제왕절개는 출산 후가 더 힘들다는데 등등... 안중에도 없던 제왕절개가 절로 생각났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직 인간으로서의 정신은 온전한 상태였다.
진진통은 눈물이 절로 날 정도로 아팠다. 중간중간 그럭저럭 참을만한 텀이 있어서 울다가 그쳤다를 반복했다. 갈수록 진통의 주기가 짧아지고, 진통이 찾아오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졌다. 누워있을 수도, 앉아있을 수도, 서있을 수도 없었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 진통은 제정신으로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다.
미드와이프를 호출했지만 역시나 오지 않았다. 남편을 시켜 직접 미드와이프를 불러왔다. 예상대로면 세 시간 후에야 delivery ward(출산 병동)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드와이프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나를 보더니 빈 출산 병실이 있나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다행히 사용 가능한 병실이 남아있었다. 걷는 것도 힘들어서 휠체어에 앉아야 했다. 내가 입원했던 병실은 5층, delivery ward는 3층이었다. 이 아픈 와중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