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할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이를 꽉 물면 안 된다. 그 힘까지도 아껴 진통이 올 때마다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속으로 끄응하면서 아기를 밀어내야 한다. 단순히 밀어내는 느낌에서 나아가 등을 완전히 침대에 밀착시키고 항문을 엄청나게 조이듯이 밀어내야 한다. 적어도 열흘은 묵은 변비를 밀어내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내 딴에는 아무리 힘을 준다고 줘봐도 아기가 나올 생각이 없는 거다. 이쯤 되면 미드와이프가 forcep(겸자)이나 vacuum(진공 흡착기)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아기를 빼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연분만 주의 호주에서는 의료진의 개입은 응급상황에나 이뤄짐으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로지 산모만이 아기를 밀어내야 한다.
출산할 때 모든 과정을 남편이 함께 했다. 단지 내 손을 잡아주거나 힘내라고 옆에서 응원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기가 나오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목격한 것뿐만 아니라, 미드와이프가 남편에게 본인 대신 내 발을 지탱해주라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했다. 몇십 분 동안은 남편이 내 한쪽 발을 잡고 미드와이프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아기의 머리를 만져보겠냐고?
미드와이프 Suzie와 간호대 학생 Rosalina가 침대 아래서 날 받치고 있었다. 내 양 발을 붙잡고 각자의 골반에 올렸다. 나는 발랑 뒤집힌 개구리 마냥 자세를 취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자궁 수축이 올 때마다 양 손으로 허벅지를 끌어당기며 있는 힘껏 아기를 밀어냈다. 그럴 때마다 미드와이프도 내 힘에 밀리지 않으려고 덩달아 같이 힘을 줘야 했다.
계속되는 푸시에도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드와이프가 회음부를 절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기를 빨리 낳을 수만 있다면 회음부 절개 따위야. 오케이. 미드와이프가 내 회음부를 누르며 자기 손이 느껴지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미드와이프가 회음부를 절개했다고 생각했었다. 직접 상황을 지켜본 남편 말로는 절개하겠다고 말해놓고 실제로 절개하진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내 회음부는 위아래로 찢어진 데다가 열상까지 입어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미드와이프가 나더러 아기 머리를 만져보겠냐고 물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아기의 머리를 만져보겠냐고? 손사래를 쳤다. 남편이 나중에 말하기를 내가 아기를 밀어낼 때마다 아기 머리가 나왔다 들어갔다했다고 한다.
드디어 아기 머리가 나왔다. 아직 몸이 다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의 들썩거림이 느껴졌다. 환청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 울음소리도 한 번 들은 것 같다. 아기 머리가 나오자 몸이 나오는 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푸시를 다섯 번 정도 더 하자 아기 몸통이 핏덩이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바닥까지 피가 똑똑 흘렀다고 한다.
2020년 09월 23일 오후 03시 41분. 드디어 잠잠이가 태어났다.
가운 앞섬을 풀고 가슴에 잠잠이를 올려줬다. 엄청 따뜻했다. 잠잠이가 별 탈 없이 무사히 태어나줘서 고마웠다. 아기를 보고 남편과 같이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아기가 태어났다는 가슴 벅참.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중에 태반이 나왔다. 나더러 밀어내라고 했는지, 미드와이프가 내 배를 눌러 밀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배에 남은 모든 걸 꺼내고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미드와이프에게 부탁해 남편이 탯줄을 자르는 영상을 찍었다. 아기는 힘차게 울었고 나는 계속해서 아기를 토닥였다. 회음부를 꼬매고 피를 닦아내는 중에도 아기는 계속해서 내 가슴 위에 있었다.
갓 태어난 잠잠이의 모습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는 잠잠이를 맨가슴에 품고 이런 생각을 했다. '아기한테서 만두소 냄새가 나.' 피로 떡진 아기의 정수리 냄새를 맡으며 '이런 게 갓 태어난 아기 냄새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