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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21. 2021

남편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

남편의 2주 자가격리와 독박 육아


    시작은 백신이었다. 시드니는 한창 락다운 기간이었고, 코로나 확진자수가 매일 역대 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시티에서는 안티 락다운(Anti-lockdown, 반 봉쇄) 시위가 열렸다. '락다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라'는 시위대는 마스크도 벗어던진 채 푯말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시티를 돌아다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센셜 워커(essential worker, 필수 근무 직종 종사자)인 남편은 시드니 CBD로 출근을 해야 했고, 그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출처: CNN 기사 (Sydney Covid cases expected to rise after anti-lockdown protest as two charged for alle)


    남편은 GP (호주의 일반의)를 만나 상담을 받았다. 델타 변이까지 확산되는 추세니 백신을 맞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 둘 다 화이자를 맞고 싶었지만, 시드니에는 화이자 잔여 백신 물량이 많지 않았다. 나이, 직업, 사는 지역에 따라 우선순위로 백신을 맞던 때였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우리 부부에게 백신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없었다. 아스트라제네카만이 우리가 맞을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었다. 남편은 바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예약했다. 돌봐야 하는 아기가 있으니 나는 남편이 접종한 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맞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하고 온 남편은 그날 밤, 몸에 도는 한기에 시름시름 앓았다. 약을 먹고, 옷을 껴입고, 온수매트를 킨 후에도 이를 덜덜 떨었다. 다음 날 아침, 한기는 조금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어지러움증이 시작됐다. 백신 맞은 후에 생길 수 있는 흔한 증상이겠거니, 버티던 남편은 결국 응급실행을 선택했다.


    남편은 응급실에서 피검사와 코로나 검사를 했다. 수액을 맞고 병실에서 기다리던 중 의료진이 들어와 새로운 마스크와 고글을 줬다.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의료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수액을 다 맞고 퇴원 서류 작업만 하면 된다던 남편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나선 지 여섯 시간만이었다.



    남편은 곧장 마스터룸 (Master room,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쓰고 머리에는 투명 막으로 된 캡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단다. 백신을 맞은 후 증상은 다 나았지만 같은 병실을 쓴 환자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자였단다. 혹 떼려다 혹을 달고 돌아오다니!





    남편의 2주 자가격리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남편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 마스터룸에서 필요한 물건을 모두 거실로 옮겨야 했다. 2주간 입을 옷과 속옷, 칫솔과 치약, 휴대폰 충전기, 이불과 베개, 그리고 잠잠이의 침대까지! 거실까지 잠잠이의 침대를 옮기느라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남편은 마스터룸에서 2주간 격리를 하기로 했다. 마스터룸 안에는 화장실도 있고, 커다란 창도 있었으며, 작지만 바깥공기를 몸으로 맞을 수 있는 발코니도 있었다. 새로운 tv를 사고 창고방에 처박혀있던 스페어 tv와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만화책 몇 권을 넣어주니 마스터룸은 초호화 호텔방으로 탈바꿈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룸서비스도 배달되고, 세탁물을 내놓으면 다음날 깨끗하게 빨아 돌아온다. 필요한 게 있으면 문자 한 통이면 해결이 된다. 무엇보다 육아에서 해방이라니!



    반면, 나는 2주 동안 거실에서 잠잠이와 단 둘이 생활을 해야 했다. 세컨 룸이 있긴 했지만 창고나 다름없는 방이었다. 그리고 거실에는 남편이 우겨서 산 소파베드가 있었다. 아, 남편이 편하게 누워서 게임을 하겠다고 샀던 소파베드가 이런 순간에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남편, 넌 계획이 다 있었구나.


    남편의 자가격리 첫날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잠잠이와 놀다가도 눈물이 또르륵, 밤에 자려고 누우면 또르륵, 방에 갇힌 남편과 화상통화를 하면서는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과의 생이별이 슬퍼서도 아니고,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남편이 안됐어서도 아니다. 2주 동안 꼼짝없이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내가 너무나 불쌍하고, 2주라는 시간의 끝이 너무나도 까마득하게 멀어서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마냥 콸콸 쏟아져 나왔다. 락다운 기간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실질적인 도움도 일절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어, 눈 딱 감고 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 놈의 눈물은 멈추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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