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 일정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비행기 좌석에 기대어 눈을 감고 피곤함을 달랬다. 설핏 잠이 들까 하는 순간 몸이 마구 흔들렸다. 뭐지? 눈을 떠 보니 비행기가 난기류로 냄비 속 끓는 물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갈수록 흔들림의 강도가 세져 거의 요동친다고 할 정도로 비행기는 몸살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적잖이 타 보았지만 그날처럼 무서웠던 때는 없었다. 승무원들도 기내 서비스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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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행기 고도가 뚝 떨어졌다. 수직하강이다. 승객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제일 크게 소리 지른 것 같다. 몸 안의 잠금장치가 다 해제된 듯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들어왔다. 승무원들은 소란을 가라앉히려고 안내 방송을 해주었지만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없애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비행기는 롤러코스터의 가장 난코스를 직접 체험하게 해 준다. 속은 울렁거리고 무서움에 심장은 쪼그라든다. 이렇게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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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면? 아침에 인사도 못하고 나온 식구들 생각이 났다. 인사라도 하고 나올 걸. 그런데 하필 그 지점에서 예금과 보험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예금과 보험이 어디에 얼마가 들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올 걸.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거라도 요긴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하나도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요사이는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그 사람의 금융현황이 주르륵 다 뜨게 되어 있어 못 찾아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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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가족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남편에게 마구 함부로 대했던 그 무수한 일들이 미안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알뜰하게 챙겨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 어린것들 둘이 놀고 있으라고 하고 엄마는 일하러 갔었지. 미국 같으면 아동학대 죄로 고발당하고 말았을 일이야. 아 어찌 이렇게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 많은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 무탈하게 이 비행기에서 내린다면 나는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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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비행기는 아무 일없었던 듯이 매끄럽게 날아 평상시보다 더 부드럽게 착륙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땅을 밟았다.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다리가 휘청하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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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기다시피 집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늘이 재활용 버리는 날인데 아직도 안 버리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였다. “아니 저걸 여태 안 버리면 어떻게 해요?” 새벽부터의 힘듦과 피곤을 다 담아 짜증 대마왕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나는 도로 제자리로 가고 말았다. 이 짧은 성찰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