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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Apr 05. 2022

우리 동네 미술관에서 만난 마티스

맥네이 아트 뮤지엄 , McNay Art Museum


   “ 어머, 진짜? 샌안토니오? 거기 엄청 더운 곳 아니야? 거기를 같이 가자고? “

    

    남편이 샌안토니오로 발령을 받게 되어서 가족들 모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2012년 미국 시애틀로 와서 8년을 살고, 그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서 9개월가량을 머문 후 2021년 6월에 급기야 낯선 땅, 텍사스 샌안토니오라는 도시로 오게 되었다.

2-3년 정도를 이곳에 머무른 후 캘리포니아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긴 하지만, 무덥기로 유명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샌안토니오라는 낯선 도시는 내게 선뜻 따라가겠다고 처음부터 기분 좋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나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남편은 2020년 11월에 먼저 샌안토니오로 떠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2021년 6월,  나와 아이들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내가 텍사스로 이사 가게 되었다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했을 때, 대학교 때부터 친자매처럼 가까이 지내는 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텍사스.... 은근히 너랑 잘 어울려.   밝고 다채로운 느낌도 그렇고.   그리고, 찾아보면 재미있고 꽤 괜찮은 미술관들이 많이 있어.  잘 찾아서 돌아다녀봐."

    

    언니는 한 7년 전쯤, 교환교수였던 형부를 따라 텍사스 휴스턴에서 2년 정도를 살았었고, 그때의 텍사스의 기억을 더듬어 내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난 한겨울에 태어난 겨울 아이여서 그런지 무덥고 땀나는 날씨보다는 눈 내리는 추운 날씨에 익숙하고 그게 더 좋은 사람이다. 그런 내게 텍사스의 불볕더위는 그다지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이사를 온 후 강아지 산책이라도 나갈라치면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서 초저녁 시간을 이용하게 되었다.

    

    텍사스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싸우며 이삿짐을 얼추 정리하고 난 뒤, 며칠이 흘러 조금은 여유가 생긴 아침이 찾아왔고, 그동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낸 미술관 리스트 중에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술관을 택해서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맥네이 미술관 이란 이름의 미술관이었고, 꽤 높은 구글의 평점이 매겨져 있었지만 실망에 대비하기 위해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우와! 어멋.... 너무 좋다!  그렇지... 이런 게 미술관이지!"

연신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쏟아져 나왔다.

    

    모던하고 간결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미술관의 외관과 미술관 내의 중앙 정원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 미술관 주변에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진 정원들과 그 사이사이에 각각 제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감각적인 조각들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어들이기에 충분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관의 외관을 보고 나니, 미술관 내부 전시실에는 어떤 작품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차츰 기대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구를 들어서니 안내데스크가 보였고, 분명 구글에서는 어른 20달러, 청소년 10달러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나와있었는데, 매주 목요일은 아마도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인 것 같았다. 아무런 제재 없이 미술관 내로 입장하게 되었다.

    

   맥네이 미술관은 이 미술관을 만든 마리온 쿠글러 맥네이의 이름을 따서 맥네이 미술관이라고 명명되었으며, 샌안토니오에 만들어졌지만 텍사스 주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현대미술관이라고 한다.   맥네이는 처음에는 19-20세기 유럽, 미국미술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현재 맥네이 미술관에는  중세, 르네상스 미술 작품, 19-20세기 유럽, 미국 회화, 조각, 사진 작품들 포함 총 22,000 여 점 이상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소장 컬렉션들 중에서 순환적으로 전시를 하고 있으며, 미술관이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예술적 체험을 하게 해주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텍사스 최초의 현대미술관이라는 맥네이 미술관의 작품들은 나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그중에서도 내 눈에 확 들어온 작품들 중 하나는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빨간 블라우스>라는 작품이었다. 약간 어둑어둑한 전시 공간을 뚫고 나오는 강렬한 붉은색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우아한 여인의 모습에 매료되어 어느덧 나는 쪼르르 작품 앞으로 가서 우두커니 서서 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화가들 가운데에서 마티스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들 중의 하나다. 마티스의 그림은 매우 단순하고 평면적 형태와 강렬한 색채를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무언가 마음에 시원한 느낌과 쾌활하고 경쾌함을 느끼곤 한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야수파(fauvisme)의 대표적 화가인 마티스는 조르주 루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끈 중심인물이었다. 마티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체의 색채나 형태를 그림 속에 그리지 않고, 빨강, 파랑, 노랑 등의 강렬한 원색과 굵은 필촉의 윤곽선으로 새로운 혁명적 회화를 완성시켰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야수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던 것 같다.


    맥네이 미술관의 많은 작품들 중 마티스의 작품에 내 이목이 집중된 것이 바로 이런 야수파적 특성 때문이었을 것 같다. 엄청난 인파의 군중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은 금방 찾아낼 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작품이 걸려있는 넓은 전시 공간 속에서 나는 좋아하는 마티스의 작품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 1869-1954),  <빨간 블라우스 > 1936, 캔버스에 유채


    팬데믹 시대를 지내오면서 맘 놓고 미술관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었던 터라, 샌안토니오에 와서 정말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를 하게 되어 큰 기쁨을 느낀 시간이었다. 별로 오고 싶지 않았던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갔던 미술관에서 맞이한 애정 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은 샌안토니오에서의 생활에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든지 샌안토니오 우리 동네에 오시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맥네이 미술관에 가서 현대미술의 세계에 빠져들게 해주고 싶다. 이제는 샌안토니오가 조금씩 좋아질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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