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내 안에 살고 있는 공룡에게 풍선을 건네는 순간, 화가 헤르만

by 미술사가 나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깨달아 알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그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기까지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미술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챈 작가 헤르만은 본인의 인정을 넘어서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음악에도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는 그림 속에 사람들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존재나 대상들, 예를 들어, 공룡, 괴수, 곤충, 거대한 것들을 그리기 원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그들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한다. 또한,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밝고 행복한 에너지를 얻고, 즐겁게 웃으며 자신의 그림을 봐주기를 원한다.


헤르만은 동양화를 전공하였고, 소산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다. 그의 호 '소산'의 의미를 묻자, 너무나 헤르만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소시지를 무척 좋아해서 '소'시지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고 싶다는 생각에 '소산'이라는 호를 지었다는 것이다. 헤르만 특유의 유쾌함이 묻어나는 설명에 속으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한자로는 작을 소, 뫼 산 글자를 쓰기 때문에 '작은 산'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원래 산은 작지 않고 크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의 작은 산처럼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듬직하게 자리 잡은 산처럼 경솔하게 행동하지도 말고, 나지막한 산처럼 겸손하게 살고 싶은 그의 마음이 그의 호에 담겨있다.

이 글 표지에 실린 작품 <공룡>에는 보라색 공룡이 클로즈업되어있고, 공룡 머리 옆 쪽에 청록색 풍선이 날아다니고 있다. 언뜻 보면, 마치 공처럼 그려져 있는 풍선은 여기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공룡을 소유하고 싶었지만, 쉽게 가질 수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도 없었다. 여기 그려진 공룡은 가질 수 없어서 더 욕심나는 그런 대상인 동시에, 어찌 보면 작가 내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작가의 자아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헤르만은 커다랗지만, 귀엽고 유쾌한 이미지의 공룡 속에 자신을 투사시키며, 자신과의 동일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투박하고 서툰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공룡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며 같이 뛰어놀고 싶어 한다.


<공룡>, 2022, 디지털 페인팅


이번 작품 <공룡>에는 보라색 공룡이 똑같이 등장하지만, 전신이 다 그려진 공룡이 동산처럼 그려진 커다란 풍선을 배경으로 작은 청록색 풍선을 좇아가며 즐거운 소리를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헤르만의 공룡은 더 이상 무섭고 파괴력을 지닌 괴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친구의 이미지이다.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함께 화면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귀여운 공룡과 함께 소리 지르며 풍선잡기 놀이를 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 이 보라색 공룡은 작가 헤르만일 수도,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공룡이 겉으로는 커다랗고 무섭고,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매우 엉뚱하고 귀여운 동시에 외로움도 많이 타는, 우리와 다름없는 인격체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라색 공룡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우리와 친밀한 관계 맺기를 원하고 있다.


<풍선>, 2022, 디지털 페인팅


선명한 형광 노란색 배경에 눈부신 오렌지색 니온 컬러로 그려진 <풍선>은 마치 사람의 캐리커처를 그려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풍선은 나름의 인격과 생각을 지닌 존재로 나타나며, 디테일한 세부 묘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한다. 바람이 약간 빠진 듯 타원형의 형체를 지닌 선명한 오렌지색 풍선은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나는 누구도, 무엇도 부럽지 않다"는 의미로 No begrudgery라는 글자를 몸에 새기고 있다. 풍선은 단호한 표정으로 "나는 나대로 예쁜 오렌지색을 지닌 완벽한 풍선이므로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살짝 자신이 없었는지 No 글자 위에 작대기를 하나 그어 놓음으로 실상은 부러움과 질투가 그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풍선의 한쪽 손가락 끝에 아름답게 칠해진 네일 아트는 더욱 풍선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능을 해주고 있다. 이런 세부묘사들에는 헤르만 특유의 유머감각과 재치가 잘 묻어있다.


헤르만에게 풍선은 항상 즐거운 순간,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이며, 이러한 풍선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행복을 그림을 보는 관객들과 함께 나누기를 소망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에게 풍선을 선물함으로써 행복을 건네주었던 것처럼, 그의 그림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공룡과 풍선을 건네줌으로써 행복과 기쁨이라는 선물을 전해주고 싶어 한다. 헤르만의 공룡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풍선을 손에 받아 들고 함께 동산 위를 뛰어다녀 본다면, 이것도 먼 훗날 돌아볼 때 우리 인생에서 행복했던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그게 싫다면, 우리 안에 있는 공룡을 깨워서 그의 손에 풍선을 건네주며 말을 걸어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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