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고 치밀한 터치로 끌어올린 호랑이 기운, 화가 화곡동 불도저
화곡동에 사는 불도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일까. 화곡동은 주소 소재지인 게 분명하고, 사람 이름이 왜 불도저인지 궁금했다. 처음엔 그가 불도저처럼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뭐든지 뚫고 나가는 진취적인 성격의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를 알아가면 갈수록, 불도저와는 반대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와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이 든 어느 날, 그에게 왜 불도저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현실에서 약간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성향을 누르고, 강하고 의지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강력해 보이는 이미지인 불도저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하였다.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져 있던 강인함을 표면으로 끌어내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내가 본 그는 매우 차분하고 조용하고 섬세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호랑이해에 태어났고, 2022년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그에게 특별한 의미일 수도 있는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 이 글 표지에 실린 <호랑이, 흑백>에서 작가는 예로부터 악한 것들을 멀리 쫓아주는, 용맹스러움과 위엄을 두루 갖춘 동물의 왕, 호랑이를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고 불렸고, 우리 옛 민화에서 자주 그려진 첫 번째 소재가 바로 이 호랑이 그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호랑이는 위엄과 힘을 갖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동물인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강력하고 무서운 존재인 호랑이를 그린 그의 의도가 불도저라는 이름을 지은 맥락과 같은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화곡동 불도저 작가는 호랑이 형상을 그릴 때 세밀한 세부묘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호랑이 얼굴에 그려진 수염과 속눈썹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얇고 섬세한 붓질과 같은 터치로 신중하게 그것들을 그려냈는지 잘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했던 하이퍼 리얼리즘과 맥이 닿아있는 듯이 보인다. 다만, 카메라 렌즈처럼 현실을 복사하듯 담아내는 하이퍼 리얼리즘이 작가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한 채 사진처럼 그려져 매우 차가운 느낌을 가져다주는 반면, 화곡동 불도저 작가의 극사실주의는 그 안에 따뜻함, 역동성, 힘찬 기운 등 살아있는 존재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과 온기가 담겨있다. 그의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화면에서 나와 으르렁 거릴 것처럼 실제와 거의 똑같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 안에 호랑이가 가지고 있는 힘찬 기운과 역동성까지 함께 그려져 있다.
두 번째 작품 <호랑이, 컬러>는 첫 번째 흑백 호랑이 그림의 컬러판이다. 흑백이던 호랑이 그림에 컬러가 입혀지니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호랑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호랑이도 같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호랑이띠인 불도저 작가는 좋아하는 동물로 호랑이를 꼽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호랑이 털 하나하나 그려낸 필치에는 섬세함과 정성이 자연스레 묻어 나온다. 우리가 살면서 저렇게 호랑이를 정면에서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불도저 작가의 호랑이 작품 앞에 서있는 지금, 여기 이곳이 아니라면 결코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뛰쳐나와 우리 주변의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호랑이 얼굴에 그려진 검은 줄무늬와 콧수염, 콧등 언저리에 준 음영, 털 한 올 한 올,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의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화곡동 불도저 작가는 명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사인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호랑이 해, 호랑이 월, 호랑이 일, 호랑이 시, 즉 네 마리의 호랑이가 모이는 시간에 만들어진 검을 '사인검'이라 부르는데, 그 사인검은 액운을 물리치고 길운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고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호랑이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종이나 하얀 면 만 보면 그림을 그렸던 소년은 자라서 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어른이 되었다.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섬세함을 발견해낸 관객들이라면 그가 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화가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무섭기까지 한 호랑이뿐 아니라, 그는 강아지, 고양이 같은 동물들 그림을 그려서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곤 한다. 너무도 사랑스럽게 그려진 그의 강아지, 고양이 그림들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고집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의 세밀한 붓질로 그려진 그의 동물들은 그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그들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는 대상의 겉모습뿐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그림 속에 같이 표현해낼 줄 아는 화곡동 불도저 작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하고 싶다. 그가 그려낼, 그가 잡아낼, 그들의 내면의 진실이 어떻게 그림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