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견과 오해에 맞서는 경쾌한 뱀의 이미지: 작가 안건우
친구의 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뱀과 만났다. 어디를 가고 있냐고 묻기도 전에 뱀은 밝고 환한 얼굴로 먼저 내게 말을 건넨다.
"난 지금 친구의 집을 찾아가려고 해.
거기가 어디인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곳이 내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될 거야."
안 작가는 원래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연기를 하는 배우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 속 뱀을 처음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연극의 스토리 같은 것이 떠올랐다. 옛날이야기나 우화 속 한 장면의 스냅숏 같은 그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전체 스토리를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실제로 매우 선명하고 눈부신 색채로 칠해진 뱀은 지금 막 이솝우화나 동화 속에서 뛰쳐나온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그 뱀은 우리에게 상냥한 말투로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사실 뱀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동물은 아니다. 나 역시 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 작가의 캔버스 위에서 다시 만난 뱀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징그러운, 그래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그런 동물이 아니다. 그의 캔버스에 그려진 뱀의 알록달록한 예쁜 무늬, 형광빛 밝은 색채와 동글동글하고 유연한 형태는 우리와 그의 뱀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가 처음으로 그려낸 뱀은 이 글 표지에 실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I - Green & Yellow> (2022)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눈들을 몸에 지닌 채, 연속적으로 S자를 그리며 유선형의 몸통을 구부려뜨리는 뱀은 세상 사람들이 지닌 자신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뱀의 겉모습만 보고 무섭고,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안 작가의 뱀은 자신의 내면은 세상 누구보다 여리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뱀을 그리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딸과 함께 이솝우화 '뱀의 꼬리와 나머지들'을 읽던 중, 뱀의 머리에 도전장을 내민 뱀의 꼬리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안 작가는 붓을 들어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온몸 전체에 그려진 무늬 같은 뱀의 눈들은 타인이 뱀을 바라보는 시선일 수도 있고, 뱀 자신이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을 인식하는 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 속에서 뱀은 사람들에게 상실과 결핍을 부여하는 악한 존재로 나타난다. 뱀은 에덴동산에 인간들이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게 한 결정적 원인 제공자이며, 실낙원의 상태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죄의 본체와 등가의 존재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뱀을 매우 지혜로운 존재라고 표현하고 있다. 뱀이 가진 이러한 이중성을 생각해보면, 그가 그려낸 뱀 또한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한 채 다시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안 작가의 뱀은 소위 우리가 팝아트의 캔디 컬러라고 말하는 선명하고 경쾌한 밝은 색채로 그려져 있다. 반 고흐 그림의 두터운 물감 자국으로 묘사된 그림 속 대상들과 유사하게, 물감의 여러 층을 몸에 지닌 안 작가의 뱀은 노랑, 빨강, 오렌지 등의 원색의 색채를 입고 더욱 생생하고 쾌활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부드럽고 수려한 뱀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뱀의 혀는 하트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서 어느 순간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뱀은 더 이상 멀리하고 싶은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어느새 말을 걸어 친구가 되고 싶은 그런 존재로 우리 곁에 자리를 잡는다.
안 작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집 지하실 창고에 세 들어 살면서, 창고를 작업실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 위에서 만난 물감 덩어리들과 형태들을 보고 그는 매우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안 작가는 언젠가 스스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지니고 살게 되었다. 작년에 몸이 아파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생겼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재료들을 사 모으고, 나이프를 들고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는 물감이 캔버스를 덮으며 쌓이는 색채들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희열감을 느꼈고, 새롭게 맛본 느낌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안 작가의 세 번째 뱀 그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III- Red & Yellow>에서 그의 뱀은 진한 노란색 배경 위에 붉은 몸체를 그림 중심부에 위치한 자신의 머리 쪽으로 둥글게 말고 있다. 어떻게 보면 독사가 똬리를 트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평면적이고 만화 같은 안 작가의 뱀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다. 세상을 향해, 또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뱀의 내면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안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그의 뱀 시리즈를 그리고 싶어 한다. 그의 뱀이 가진 여러 감정들과 생각들을 다양한 뱀의 형상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또한, 그의 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안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읽어주기를, 그가 전해주고 싶은 예술적 에너지와 영감을 고스란히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글을 쓰고, 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 또한 안 작가의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할 시간이 왔다. 만약 언젠가 우리가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서는 안 작가의 뱀을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다정한 말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가 떠나는 여정이 외롭지 않도록 동행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순간, 안 작가의 뱀들은 더 밝고 환한 웃음으로 오히려 더 큰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우리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편견에 눌려있는 생명들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려는 우리의 작은 노력이 때로는 누군가의 살아갈 힘과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