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번째 방울
#항상 잃어버리는 모든 것
우리는 항상 무엇이든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하는 형태로 스스로의 소유를 박탈당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있을 때 잘하자', '꽃이 지고 나니 봄인 줄 알았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등과 같은 명언들을 쏟아내고는 한다. 미묘하게 맞는 것 같기도 틀린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존재의 소중함'을 상기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수준과는 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존재에만 감사할게 아니라 부재에도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랑시는 어디에 감사할 것인가
오랑시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무대가 되는 도시로, 전염병이 퍼져 도시 전체가 폐쇄되는 악재를 겪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더욱 인기를 얻게 된 이 소설은 인간이 지닌 각양각색의 자아가 충돌하여 더욱 혼란스러운 사회를 만들어내고 이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부재로 잘 표현해 냈다.
폐쇄된 오랑시에는 사람들의 절규와 비탄이 쏟아져 나온다. 평화로웠던 도심은 온 데 간데 없어졌고 국가의 안타까운 대처에 시민들은 참지 못하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조용히 예배를 드리거나 하는 형태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점점 죽어가고 있는 오랑시는 일상생활의 부재로 있음에 대한 갈망과 욕구로 가득 차있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지나 오래도록 기다려온 봉쇄가 해제되고 모든 오랑시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거리를 서성일 때, 전염병이 끝이나 이 봉쇄된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행복한 일상이라는 존재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된 순간을 생각하며 부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Z군은 수중 속으로
오랜만에 본인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2020년 12월, 5년간 사용하던 애증의 아이폰을 놓아주고 Z플립을 구매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외형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넓은 디스플레이와 만족할 만한 성능은 Z군과의 동행을 오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전, Z군은 수영이 하고 싶었는지 변기통에 몸을 던졌다. 정확히는 머리를 감기 위해 선반 위에 올려두고 머리에 적시는 물을 느끼다가 문득 '툭'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떨어진 것을 감지했으나 Z군이 떨어졌을 거라 상상하지는 못했는데, 굉장히 싸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그는 이미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리비가 너무 비싸 보험을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함과 그는 책상 서랍에 잠들어버렸고 애증의 아이폰을 다시 꺼내 쓰게 되었다. Z군이 존재했던 삶이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부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다른 폰으로 넘어가기까지 그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부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사례는 얼마든지
주변에 그런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당장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빼앗은 장본인이다. 언택트의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지만, 분명 단점이 더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지금 이 상황이 쥐여주는 동경의 삶을 더욱 바라게 하는 것에 이따금씩 이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Z군이 아니더라도 동생이 얼마 전에(Z군이 입수하기 전날) 입소식으로 부재를 실감하고 있으며, 동생이 있어 화목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돌이켜보며 훗날 추억이 될 순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단연코 이 순간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여러분도 당연히 존재에 감사하지만, 그것이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을 몸소 느낀 적이 있을 거다. 이제껏 우리는 항상 부재에 툴툴대고 불평을 해왔지만, 부재가 있음에 존재가 감사하기에, 오히려 부재가 일어난 것에 존재에만 쏟아붓던 소중함을 나눠줄 수 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