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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누룽지 Dec 24. 2020

Ep22. 그 시절 넌 어디 있었는지

스물두 번째 방울

<Piano> -D.H Lawrence

부드럽게, 황혼 녘에, 어떤 여자가 내게 노래해주고 있다.
나를 세월의 뒤안길로 데려다주는 노래를.
마침내 나는 어떤 어린아이가 귀가 얼얼하도록
현이 울리고 있는 피아노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아이는 노래할 때 미소 짓는 어머니의 균형 잡힌 조그만 발을 꼭 누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노래의 음험한 위세가
나를 무심코 배신한다. 나의 마음은
그 옛날 집에서 주일날 저녁 밖은
추워도 안락한 거실에서는 딩동대는 피아노를
우리의 안내자 삼아 찬송가가 흐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겠다고 눈물 흘린다.

자 이제 가수가 커다란 검정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치며 절정으로 치달아도 소용없다.
어린 시절이 나를 덮쳐, 나의 어른스러움은 기억의 홍수 속에 내던져졌다.
나는 과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운다.

*원문: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4580/piano

#D. H. Lawrence(이하 로렌스라고 칭함)

영국의 소설가 겸 비평가로 <아들과 연인 Son and Lovers>와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atterley's lover>는 그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노팅엄셔 주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의 출생으로 주정뱅이 광부 아버지와 조선 기사 딸로 교사를 지낸 어머니의 지속적 갈등이 그의 사춘기와 성격 형성, 향후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Piano>와 Nostalgia

<Piano>는 로렌스의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모든 애정을 표출함과 동시에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시에서 나타나는 어린아이 즉, 어머니의 고운 손으로 만들어지는 피아노의 음정을 살포시 옆에 앉아 듣는 이 아이를 지켜보는 로렌스. 어른이 된 로렌스가 그리워하는 피아노의 선율은 일요일이면 반드시 찾아오는 찬송가의 부름을 따라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도 안락한 거실에서 들려오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나타난 피아노 소리가 가지는 청각과 어머니의 발을 누르는 촉감, 두 아름다운 형체를 휘감는 시각을 조화한 손에 잡힐듯한 회상은 향수의 정수다. 이제 그는 절정에 다다른 여인의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에 귀 기울인다. 어린 시절에 갇힌 로렌스는 아름다운 순간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홍수처럼 몰려오는 상위의 노스지아. 이미 지나간 시절에 과거처럼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Where were you at?

<Piano>를 보면 어릴 적 향수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들. 그 아름다움을 아는 모든 이에게 로렌스의 작품은 내가 존재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한다. 저번에도 밝힌 바(3. 험난한 유럽 홀릭-1), 나는 애니메이션 <알라딘>에게 나의 추억을 맡겼다.


약 15년 전, 다중 매체가 부족했던 때, 나는 항상 티프로그램보다는 비디오를 선호했다. (물론, 추억의 애니메이션들도 보긴 했었지만(이누야샤, 짱구, 원피스 등).) 본인의 집에 있었던 비디오테이프들을 특히나 아꼈다. 핑구와 텔레토비 그리고 유일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알라딘을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중간쯤 오면 알라딘과 재스민 공주가 양탄자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재생되는 'A whole new world'를 들을 수 있다. 이 노래는 항상 나를 신비롭고 더 멋진 환상으로 인도하고는 했다.


이미 내가 살아온 삶의 반 정도가 지난 세월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다시금 행복해지곤 했었다. <Piano>는 행복하고 그리움의 감정에 시각을 더해주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처럼 최면을 할 필요도 없다. 환생의 기억도 아니다. 나의 삶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알라딘과 함께'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 오게 된 것이다.


내가 본 것은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아파트의 2층, 주차장이 보이고 차는 드문드문 자리를 비워 평화로운 낮의 여운. 조그만 초등학생이 서랍에서 <알라딘>이라고 적힌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고 소파보다 앞에 앉아 기다리던 미소였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지니가 자유를 얻는 그 순간까지 아이는 자리를 지켰다. 순수하고 따스한 결정체였던 그 아이를 A whole new world와 함께 문 뒤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가? 이를 환기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디에 있었나. 흐뭇한 추억으로 돌아가는 여정. 혹여나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처럼 캐롤을 들으며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시기임을 모두가 실감하는 이때, 심심한 위로가 되는 여정이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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