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도시가 떠오른다. 그 마을이 아름다운 건 마을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이 예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사는 동네와 집과 방이 아름답지 않게 느껴진다면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곳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나고야 여행 2일째 방문했던 다카야마는 작지만 잘 정돈된 예쁜 장난감 같은 마을이었다.
나고야런, 해외에서의 첫 러닝
나고야에서의 아침 러닝 후 인증
다카야마로 출발하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러닝을 했다. 해외에서의 달리기를 바라고 바랬는데 첫 소망을 이뤘다. 어디서 풀려난 사람처럼 열심히 달리는데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상에서는 왜 이렇게 뛰지 못할까?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다.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깨어나도 느낌이 극과 극이다.
"여행의 생기를 일상에서도 항상 유지할 순 없을까?"
나고야역 근처, 다카야마행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나고야의 아침 하늘은 필터를 끼운 사진처럼 선명했다. 길을 걷는 내내 동생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언젠가 그리워질 순간들이 하나둘 추억이라는 앨범 속에 담겼다.
햇살과 눈과 비, 다카야마로 향하는 길
다카야마행 버스에 올랐다. 교각 위로 새하얀 구름이 펼쳐졌다. 스쳐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맑은 색감의 하늘과 집들. 언젠가 이런 맑은 느낌을 본 적이 있었다. 작년에 갔던 제주도였다. "섬의 날씨는 모두 맑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40분여 달렸을까 날씨는 금세 180도 바뀌어 설국으로 뒤덮였다.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시외버스 안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이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고?" 심지어 화장실 안에서는 ASMR을 연상케 하는 시냇물 소리도 틀어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일본인들의 섬세함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지만 잘 정돈된 마을, 다카야마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다카야마. 다카야마에는 작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햇살과 눈과 비를 단 3시간 만에 모두 경험한 경이로운 날이었다.
하천을 끼고 있는 미야가와 아침시장에는 꽤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전통가옥 음식점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가게에 줄을 섰다.
2피스에 900엔(약 9,000원)인 와규초밥... 상당히 비쌌지만, 꼭 먹어봐야 한다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다카야마는 와규로 굉장히 유명한 동네라고 한다.
잘 정돈된 거리. 목재로 된 전통 가옥들. 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스밀 것 같으면서도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나무가 바람을 맞는 소리마저 포근하게 느껴질 듯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껴지는 스산한 고요함. 옆에서 동생이 말했다.
"인구감소 직격탄을 맞은 게 아닐까요?"
듣자마자 감성은 파괴됐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관광지로 굉장히 알려진 곳이지만 어쩌면, 이곳도 심각한 인구절벽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관광객이야 잠깐 왔다가 떠나지만 주거민들의 삶이 어떨지는 알 수 없으니까.
다카야마에 위치한 쇼와관,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곳
추억을 소환시킨 곳, 바로 쇼와관이다. 7~90년대 일본인들의 생활과 다양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 인스타 감성을 좋아한다면 이곳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안에서 찍은 샷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낮술의 추억... 두 남자를 주정뱅이로 만든 양조장
졸지에 주정뱅이가 되어버린(?) 문제의 양조장. 이모가 다카야마에 가면 꼭 들르라고 한 곳이다. 사케잔과 사케전용 동전을 산 후 사케 자판기를 통해 1잔씩 다양한 사케를 음미할 수 있다.
뭣도 모르고 한 번에 1000엔(약 10,000원)치 동전을 뽑았다. 세어보니 무려 13잔이었다. 달달하고 고소한 사케가 1잔, 2잔 들어가니 몸이 달아올랐다. 결국 안주까지 사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르 잡고 마시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옆에서 사케 제조 체험을 하던 한 서양인 아저씨가 우릴 향해 '따봉' 손짓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코리안, 대단해요."
다카야마에서 먹은 라멘
취기가 잔뜩 오른 채 양조장을 나섰다. 햇살 사이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일까. 내리는 비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실로 사케의 힘은 대단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소주대신 사케를 마셔야지. 생각했다.
빗줄기를 뚫고 근처 라멘집으로 향했다. 해장이 필요했다. 앞에 앉은 동생은 메뉴가 나오자마자 3분 만에 라멘을 흡입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라멘 중에 최고라고 했다. 뒤늦게 국물까지 깡그리 비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맛있었다. 배를 부여잡고 동생이 말했다.
"여행을 와서 먹어서가 아니라, 진짜 먹어 본 라멘 중에 최고였어요."
뜻밖의 만남, '깊은 산속 옹달샘' 숙소
다카야마에서 1시간 30분여 떨어진 시골에 위치한 숙소
-숙소 주소 : 기후 현, 다카야마, Okuhida Onsen-go Kansaka 440-1
2일 차 숙소는 그야말로 일본 감성 그 자체였다. 사실 이곳은 장소를 착각해서 잘못 예약한 곳이었다. 원래라면 다카야마 터미널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아야 했지만 실수로 1시간 30분여 떨어진 곳을 예매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뜻밖의 행운이었다. 생각 외로 너무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
눈 내리는 노천탕과, 코스 요리, 일본식 전통 가옥의 느낌까지. 1석 삼조를 누릴 수 있었다. 누가 잠을 자러 이렇게 첩첩산중인 먼 시골까지 가겠냐 싶지만 실수를 했기에 올 수 있었다.
인생은 때로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계획했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꼭 그대로 돼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삶을 살아갈 때도 여행을 하듯 조금은 마음을 유연하게 먹어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