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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시(詩)를 앓는다.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읽고

by 글로 나아가는 이

나지막하게 봄이 오고 있다. 온 거리에 한기가 걷히고 따스한 기운이 올라온다. 바람이 선선하다. 말 그대로 '봄'. 보고 싶던 봄이 왔다. 봄에는 뭘 하면 좋을까?괜스레 기운이 난다.


봄에는 얼었던 만물이 녹고 새순이 돋는다. 사람의 마음에도 다양한 감정이 샘솟는다. 갑작스런 변화가 어색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억누를 필요는 없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니까.


잠깐의 틈을 이용해 시(詩)를 읽는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있다면 가까이해도 좋다.


어머니께서 건네준 한강 작가의 시집. 한강 작가는 어머니와 1살 차이다. 시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상을 탄 듯 기뻐했다.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은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한국의 작가가 또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시집을 읽은 지 한참이 됐다. 잃어버렸던 마음의 봄을 되찾기 위해. 강물처럼 푸르른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잠시나마 감상해 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복잡한 생각.. "흘려보내야지"하고 생각하다가도 하염없이 붙잡고 있다. 때론 사라져 버려도 좋겠지만, 생각이 또 생각을 붙잡는다. 매 순간 지나가고 있는 무언가. 그것이 '시간'이라고만 단정 짓기에는 너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흘러가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다. 지나가는 것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가. 기왕 보내야 한다면 환한 미소와 인사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겠다'고 고백한 윤동주 시인처럼, 힘없이 사라져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글로 나아가는 이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인 꽃가루가 아니었다.


-한강, 회상 中




칼과 총을 들고 투쟁해 본 적 없어서 삶의 가치를 모른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모든 걸 갖추고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당장 내일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행인의 외침에도, 햇살이 내리고 싹이 돋는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은 모순이 아닌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꼽추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다. 마음도 몸도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기울어진 삶들이 많다. 각성해야 하는 이들은 그들의 부모인가. 정치인들인가.


따스하지만 차가운, 이런 봄에는 시를 앓는다. 하지만 계절만큼은 기울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읽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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