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눈빛을 훔친 남자 : 빈센트 반 고흐'를 읽고
사람이 한평생 예술을 느끼고 접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일하는 시간 대비 무척이나 짧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우리의 삶에는 예술이 필요하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시(詩)든 소설이든 어떤 예술이든 그것은 우리의 얼어붙은 생각을 열고 영혼을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쉬는 날 쉼 없이 작품을 찾아 나선다. 꼭 거창한 대작이 아니어도 좋다.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시집 한 권, 우연히 들른 카페의 벽면에 걸린 그림,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명곡, 무엇이든 예술은 늘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다.
"내 앞에 전개한 풍경에 백지를 놓고 앉았었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 화폭에 무언가를 그려야만 했지. 그런데 결국 나는 만족하지 못했고, 그림을 한쪽에 두었다. 좀 쉬고 나서 다시 그림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어. 여전히 흡족하지 않았다.
낮에 본 멋진 광경이 머리에 또렷하기에, 내가 그린 것에 만족하지 못한 거야.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풍광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 나는 자연에 말을 걸었고, 그것을 내가 다시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지." (1882년 헤이그에서, 빈센트 반고흐)
고흐는 워낙 유명한 화가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어떤 사연이 담겨있는지는 잘 몰랐다. 사실, 하나하나에 모두 어떤 사연이 담겨있지는 않다. 예술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기에 더 그렇다. 일전에 고흐가 동생인 테오에게 일생동안 쓴 편지를 묶어 낸 책(반 고흐, 영혼의 편지)을 읽은 적이 있다.
고흐의 마음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가 그림과 예술에 얼마나 열정적이고 진심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제 만약 한 사람이 그림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면, 책에 대한 사랑도 렘브란트에 대한 사랑만큼 성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할 거야. 나는 책과 그림, 둘에 대한 사랑이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해." (1880년 6월 22일 화요일에서 24일 목요일 사이, 빈센트 반고흐)
평생을 딱 하나에만 빠져서 상아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나라면 책, 달리기, 아니면 사랑에 빠져 살겠다. 정말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책도, 운동도, 그 무엇도 모두 사랑을 실현하고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니까. 이 말은 다르게 보면,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단 한순간도 존재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델은 극장식 식당에서 일하는 아가씨네. 내가 찾던 에케 호모 같은 표정이었어. 하지만 그녀의 표현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내 나름의 생각도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했지. 그녀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밤새도록 일에 시달린 듯한 모습으로 딱 그런 분위기의 말을 했어. '전 샴페인을 마시면 기쁘기보다 오히려 매우 슬펴 저요.'라고 말이지.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라. 그래서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슬픈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했어. 나는 시골 아낙네를 그릴 때는 사골 아낙네의 분위기가 느껴지게, 매춘부를 그릴 때는 매춘부의 표정이 드러나게 그리고 싶어." (1885년 12월 28일 월요일, 빈센트 반고흐)
고흐의 그림과 편지를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윤동주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 말이다.
태어난 시대와 환경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에게는 읽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라든 가정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내가 살던 동네의 아름다운 풍경이든, 사랑한다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을 테니까.
내가 영원히 지키고 싶은 건 뭘까. 내가 글로써 남기고 누군가에게 영원히 알려주고 싶은 건 뭘까. 알기 위해선 계속 써 내려가는 수밖엔 없을까.
-글로 나아가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