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새벽 1시, 책상 앞에 앉아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무언가 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낯선 적막만이 공기를 감싼다. 적막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든 나 자신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써 내려갈 수 있다. '내가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 같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도, 뭔가를 쓰고 정립한다면 그때부터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늘 하루도 많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무엇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주 사소한 권태와 무력감, 영원하지 못할 안도와 피로감. 아침부터 저녁까지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없다면 어떻게 마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불안하고 날 서게 만드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의식의 흐름을 기록할 수 없다면 필히 이미 우리는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잠을 사랑할 줄 아는 용기, 불면의 시대
마음속에서 결핍을 발견하는 건 꽃을 보고 꽃씨를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적막과 외로움을 마주할 기회조차 갖기 쉽지 않은 세대이기에, 고뇌에 순간은 항상 무언가에 의해 공격받는다.
하루를 마치고 조용한 방 안에 앉아 뭘 할까 생각하다 보면 금세 눈이 감겨온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잠시 접어두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이 수면이다. 제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근 1년간 자정 전에 잠에 든 날은 손에 꼽는다. 현대인이 많이 겪는 여러 움 중 하나가 수면 장애라고 하는데 사실은 '잠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진짜 문제일지도 모른다.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잠과 굉장히 소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스스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와 굉장히 멀리 떨어진 상태로, 곧 당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신호다.
어릴 적에는 "몇 시에 자야지"라며 늘 잠을 준비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잠은 처리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넘어서야 한다. 잠을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오롯이 뜻깊은 시간을 보내야만 잠도 우리를 편하게 놓아줄 것이다.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언제 헤어져도 아쉽지 않은 친한 친구처럼 말이다.
# 자연 속에서 걷고 뛰기. 다만 천천히. 오직 호흡에 집중하면서
어느 날 잠깐 일정이 비어 보라매공원에 갔다가 놀랬다. 내 온몸이 사방에서 오는 풀 냄새를 맡으며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종일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마주한 적막은 작은 천국 같았다. 공원에서는 국제 정원 박람회가 열리고 있어 평소보다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발은 천천히 앞으로 걷고 있었지만 호흡과 심장 박동으로 이어지는 감정은 아주 우아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서울에서 그런 자연스러운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경이로웠다. "뭐 그 정도겠어?" 싶겠지만 평소에 자연과 마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주 가끔 몇 달에 한 번 자연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숨을 놓아버리기 일보 직전에 인공호흡을 하듯 우린 일상이 번아웃에 다다를 때가 돼서야 숲을 찾는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삶인가. 우리 현대인들의 삶은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편안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그 어떤 땅보다 메말라 있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내 모든 생명체가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대가뭄처럼 말이다. 진심 어린 말 한마디, 호흡 한 번, 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높디높은 하늘, 따스한 햇살 하나가 간절한 시대다.
조금 더 활동적으로 적막을 느끼고 싶다면 '달리기(러닝)'을 빼놓을 수 없다. 러닝을 할 때 찾아오는 적막은 그냥 걷거나 산책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표현하자면 훨씬 온도가 높고 깊다. 그리고 심장 박동과 혈액의 순환이 주는 활력이 정신을 매료시킨다. 일종의 마취제 같은 효과다. 달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일상에서 느꼈던 고통이 흐릿해진다. 그렇다고 (일상의 걱정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생각의 굴레 속을 계속 헤매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적막 속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이전의 모든 삶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듯이. 그저 달리는 나 자신만이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적막하다면 당신은 여전히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 불안을 그저 끌어안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