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나아가는 이
부쩍 예뻐진 계절을 걷는다. 오래전 미래를 약속했던 가지들이 손을 흔든다.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나무들이 저마다의 인사를 건넨다. 헐벗은 마음을 동경했던 그때가 그리워, 그래서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포근한 광화문 거리, 어떤 시절이 우릴 그렇게 붙잡는 걸까. 추억 조각이 흩날린다. 예고조차 없던 첫눈이 내린다. 그리움이 속삭이듯 온다. 너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되뇐다. 입 속에 사랑의 말들을 머금고서.
안녕. 나의 사랑하는 겨울아.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7년이 다 되었네. 함께 맞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 돌아왔어. 나는 이 계절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 너와 내가 인연을 넘어 보이지 않는 끈으로 꽁꽁 묵여버리는 이 순간을 말이야. 지금도 두려워. 여전히 불안해. 하지만 우린 다정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래서 우리 만남은 카스테라보다 부드러워. 하지만 우리의 열정은 바게트처럼 질겨. 태초부터 따스함을 그리워했던 겨울아. 이제 내가 너의 겨울이 될게.
사랑은 정말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다. 외로움의 감옥에 비췬 노란 햇살처럼. 한 사람의 삶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다짐처럼. 사랑을 안고 태어나 살아가는 것들은 전부 무모하다. 생명을 위해 거침없이 파괴하고 나아가니까. 보도블록 틈새의 민들레 꽃, 그 무모함을 동경한다. 너를 무모하게 사랑했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초겨울, 계절을 넘는 저 하늘을 공경한다. 때론 나를 무너뜨려야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진실을 바라보며. 학대나 나르시시즘 같은 불온한 사상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느낀 고뇌의 산물이다. 소리소문도 없이 어느 날 깨달아버린 공허함. 공허는 계절이다. 그 시절이 지나면 모두 잊게 된다. 계절의 흐름과 그를 알리는 어떤 새들의 울음소리 외에는. 계산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공평히 도래한 초겨울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다.
-글로 나아가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