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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Apr 24. 2022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매일 인연의 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아직 사랑을 믿는 철부지들의 만남


최근 내가 사는 방 근처로 한 친구(M)가 이사를 왔다. M을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길거리에서였다.


국제구호단체의 전문 모금 활동가로 일하고 있던 M은 먼저 내게 말을 걸었고, 잠깐의 대화 후 우리는 헤어졌다. (당시 M은 내게 같이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권했었다. 하지만 난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거절했었다) 이후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그런데 2년쯤 뒤, 내가 들어간 회사에서 다시 M을 만났다. 심지어 같은 팀에서 말이다. 길게 일하진 않았지만, 같이 활동을 할 때마다 대화가 잘 통해 의지가 많이 됐었다. 그렇게 난 다시 퇴사를 했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몇 년 뒤인 지금, 우린 다시 동네에서 만났다.


정말 신기했다. 만남도, 같은 회사에서 만나게 것도, 그리고 근처로 이사를 것도, 모두 우연의 일치였으니까.


최근 M과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앞 벤치, 공원에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대략 이렇다. 


Q. 생계와 감수성을 어떻게 같이 지켜낼 수 있는가?  

Q. 자유로운 영혼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Q. 왜 많은 예술가들이 가난하게 살아가는가?  

Q.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은?  
Q. 박애주의가 꼭 필요한 이유?

Q. 세상은 왜 이렇게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가?

Q.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 무엇을 바랄까?


등등. 사실 명확한 답을 내리기 힘든 주제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에 이처럼 중요한 질문들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M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흘러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근사한 장소에 자리를 잡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이 친구와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재, 나와 M은 모두 진로를 고민하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진하고 있다.


20대 때는 자유의 광야 속 광활한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녔다면, 이젠 세상의 어둠 속에서 (각자의 천성대로) 빛을 내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꼭 담으려 한다.


너무 거창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하면, 그냥 아직도 낭만과 사랑, 예술 같은 것들의 가치를 믿는 철부지들이란 소리다.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다시 사랑할 수 없다면


좋아하는 감성의 영화 두 편을 다시 봤다. 제목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빛의 명장이라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포근한 감성이 정말 좋았던 작품들이다.  작품들은 항상 '인연'을 생각하게 만든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설정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시간을 돌려서라도, 하늘에 닿아서라도,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다시 두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만남은 매번 마지막 순간이  수도 있다는 생각.


지금 내게 주어진 인연이 모두 사라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고, 부모님과 형제들을 다시 볼 수 없으며,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와 직장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늘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단골 식당의 사장님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과연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눈부시게 평온한 날에도, 억수 같이 장대비가 내리는 날에도, 새하얀 함박눈이 나리는 날에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이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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