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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May 06. 2023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마라톤 애호가가 되었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고른 책.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본 문학의 거장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매일을 고통 속에서 달리는가?

그의 회고록을 읽으며 생각한다.


아테네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왜 달리는가?" 


달리기를 좋아해서?

달릴 때의 느낌이 좋아서?

뛰고 난 후의 기분이 좋아서?


사실, 달리기를 할 때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달리기의 과학적 효과보다

몸으로 직접 느끼고 깨달은 바다.


하루키의 마음을 빌려

달라기를 향한 나의 애정을 표현해 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7월에는 310킬로를 달렸다.

이틀 동안 비가 왔고, 여행을 다니느라 뛸 수 없었던 날도 이틀 있었다.

그리고 녹초가 죌 정도로 더운 날이 며칠인가 계속됐다. 그걸 생각하면

310km를 달릴 수 있었던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결코 나쁘지 않다. 한 달에 260km가 '열심히 달린' 것이라고 한다면

310km는 '성실하게 달린' 것이 될 터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오직 달리기 위해 달린다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증거 움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도 썼듯이,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두서없이 떠올릴 때도 있다.

때때로(그런 것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일전에 김연아 선수가 운동하는 모습을 인터뷰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 그녀에게 "무슨 생각하면서 해요?"라고 묻자,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말이 맞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뛸 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


물론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몸을 떠나는 순간부터

자세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 달리고 있는 몸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하루키의 말대로

뛰고 있는 동안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각이 몸에 집중된다.


생각을 하더라도

금방 휘발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달릴 때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잡념이다.




 ▲살기 위해 달린다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에 쇠잔해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은 잃는다.

그와 같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설가로서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많은 이들이 달리기를 즐기는 이유에는

건강이 빠지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20대때 알게 됐다.

내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언젠가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신촌에 살 때는 연세대학교 운동장을

고향에서는 집 앞 테니스장을

지금은 보라매공원과 도림천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변을 통제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며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자신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의지로

멈추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수에서 수십 km의 거리를 달린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동차가 아니다.

그래서 목적 없이

나의 의지대로

그냥 달린다.   




▲당신의 페이스대로, 당신의 길을 가라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km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어려운 일은 파도가 칠 때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일이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파도의 힘을 빌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마라톤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페이스다.

인간은 늘 보이는 것에 약해서

누군가 자신을 추월하면

따라가려고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벗어나고

금방 지치고 만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하루키가 말했듯

얼마나 자신을 느끼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느냐이다.


언젠가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달리고 보니

이젠 알 것 같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쉽게 답을 얻진 못한다.

그저 순간순간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달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그럼,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달리다 보면 일상에서 느낄 수 없던


내가 달리고 있다는 것.

나라는 존재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내 심장이 숨과 함께 연결돼 뛰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게 인생과 크게 다를 게 뭐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 뜰 수 있고

뛸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아직 하프 마라톤을 한 번 완주했을 뿐이지만

조만간 나를 위한 도전으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이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언제나 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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