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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ul 19. 2023

계획대로 되지 않는, 행운에 대하여

무너져야 본질이 보인다


요즘 획을 파괴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는 MBTI, J 성향이 강한 내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연습하고 경험하다 보니 이젠 조금씩 익숙해진다.  


나에게 묻는다. 그동안 왜 그렇게 계획에 집착하며 살아왔을까? 계획으로 이룬 건? 반대로 잃은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중 어떤 일일 계획대로 될 것이고, 어떤 일은 아닐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계획을 벗어난 일은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 무너져야 본질이 보인다


물론 계획이 필요 없다는 걸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계획과 루틴에 집착해 온 사람으로서, 때론 계획을 내려놓고 수시로 변하는 삶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다.


작년 여름, 친한 친구와 여수로 여행을 떠났다. 오래간만에 떠나는 여행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다. 비를 대비해 우비도 챙기고 시간 단위로 이동 계획을 철저히 세웠다. 하지만 계획은 시작부터 꼬였다. 가져와야 할 지역 화폐 카드를 두고 와 당황한 나머지 비행기 탑승 수속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2시간여 미뤄진 출발에 모든 계획을 변경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야시장은 전날 많은 비로 인해 대다수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다른 시장에서 뒤늦은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 결국 짜증이 난 친구와 다퉜고 지친 채 숙소에서 잠에 들었다.


물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계획은 조금씩 뒤틀렸고 몇 번을 더 다퉜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안개로 인해 연착됐고 결국 4시간 이상을 공항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현장의 상황은 결코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어떤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여행의 끝자락. 친구와 나는 어느 정도 체념한 모습이었다. 공항에 널부러진 둘의 모습은 흡사 수십년의 삶을 받아들인 두 노인의 모습 같았다.


돌아가는 길, 비행기 안에서 친구와 여행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데 무엇보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던 부분까지 알게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변동이 많았던 만큼 그 안에서 느낀 감정과 경험도 다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년여 지나고 보니, 그때의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예측하지 못한 일에 대응하는 법도 배우고 배운 점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좋은 여행의 기준도 달라졌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여행보다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는 여행이 더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획이 틀어졌을 때 고뇌하고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진정 우리는 성장한다.




 당신이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우연. 사람들이 운명과 우연에 열광하는 이유는 낭만적이어서도 있지만 계획 밖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큰 매력을 느낀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우연이 삶의 뉴스가 되고 언젠가 추억거리가 된다.


하지만 꼭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대다수 우리의 계획 너머에서 이뤄졌다.



당신의 출생, 친구들, 연인 혹은 배우자, 직업, 좋아하는 음식, 취미, 기억에 남는 추억들.  이 중에서 당신이 계획에서 당신에게로 온 것들이 몇 개나 되는가? 우리의 삶은 모두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걸지도 모른다.


매일 깨닫지만 또 금세 망각한다. 잘 먹고 잘 살지 않아도 좋다.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내게 주어진 것들. 이들에 대한 감사만 매일 잊지 않더라도 삶의 길과 가치는 적어도 잃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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