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Aug 04. 2023

생각의 한계가 육체의 한계다

글로 나아가는 이의 러닝 에세이


어제는 일과가 늦게 끝나 새벽 한 시까지 러닝을 하고 들어왔다. 그리곤 씻지도 않은 채 소파에 널부러져 잤다. 평소 정리를 하지 않고선 잠자리에 들지 못하지만 최근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번아웃처럼 보인다. 하루를 꽉 채워야 성이 차는 내게, 요즘은 몸이 말해준다.


"너무 많은 걸 하고 있어. 왜 하는 거야? 무얼 위해서? 이젠 한계야."




▲생각의 한계가 육체의 한계다


앓는 소리. 불평이나 한숨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나온다. 8년간 러닝을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몸은 계속 뛸 수 있음에도 뇌가, 머리가 자꾸 "이 정도면 됐다"라고 소리친다는 걸. 생각해 보면 호흡과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졌을 뿐 뛰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는 옆에서 누군가 같이 뛰어줄 때 증명할 수 있다. 혼자였다면 이미 멈췄겠지만, 같이 뛰는 누군가의 격려와 독려가 있으면 달리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러닝은 버티기에 가깝다. 오직 한계를 넘는 자신과의 싸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외부의 새로운 자극이 아니라, 오직 내 몸을 움직여 느끼는 자극에 적응하는 일. 그리고는 그다음의 한계를 향해 나아간다. 정확하게는 내 심장의 한계, 호흡의 한계, 끈기의 한계다.  


뇌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두려워서, 다칠까 봐, 상처받기 싫어서, 포기하고 뒤돌아보며 회피한다. 그렇게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뇌의 교활함과 싸우는 연습이 바로 러닝이다. 결코 뇌가 편함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진짜 편안함이 왔을 때 그 시간을 오롯이 감사하며 누리기 위해.




▲버티기를 넘어 훌륭함을 향해


"한 바퀴만 더, 조금만 더"




평균 페이스는 컨디션-체력 정도에 따라 5분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9월 말까지 최고 페이스 '4분 30초'를 돌파하는 것이다.


지난 8년간은 버티기(목표한 거리 완주하기)에 집중하고 처진 감정을 날려 보내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젠 속도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중량을 높여가며 근육에 더욱 높은 자극을 주는 훈련을 한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더욱 속도를 높여 몸에 더 큰 충격을 줌으로써 근육과 심장의 피로도를 높여 더 큰 자극에도 견딜 수 있도록 단련한다.


일전에 누군가 내게 그랬다. 너는 버티기에 아주 최적화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에 힘이 풀려버리는 단점이 있다. 좀 악착같이 붙들고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걸 극복하는 연습을 한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여기서 나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나는 그 한계를 왜 넘어야 하는가? 러닝 기록의 한계를 넘는 것이 뇌의 한계, 생각의 한계, 삶의 한계를 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훈련을 해가며 직접 찾아야 한다. 훈련의 끝에 "러닝 훈련이 삶의 한계를 넘는 것과 무런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도 괜찮다. 왜냐하면, 러닝은 어떤 측면에서든 인간을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겸손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