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끔이지만 일상은 매일이다. 그럼 뭐가 더 중요할까? 물론 둘 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일상은 여행을 보장해 주지만, 일상이 무너지면 여행조차 꿈꿀 수 없다.가장 좋은 방법은 일상을 여행처럼 늘 설레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일상이든 여행이든 그 순간(현재)에 집중할 때, 뒤에 있을 일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여행을 할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마음"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 여행은 당신이 보고픈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행은 당신이 보고 싶었던 풍경만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기대했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으며, 온라인에서 찾은 편집된리뷰와는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태종대가 그랬다. 태종대는 10년 전부터 부산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내가 상상한 태종대는 구불구불한 기암절벽과 거대한 나무들이 밀집해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특히 오션플라잉테마파크는 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부 카페 외에는 크게 볼 것이 없었다.나는 태종대에게 무엇을 기대한걸까.
시선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여행지가 여행자의 기준에서 그럴싸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순간, 자연과 휴식 속에서도 효용성을 찾으려 하는 내 모습을 자각했다.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에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 깨달았다. 다시 마음을현재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평안을찾을 수 있었다. 드넓은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동생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그냥... 아무 생각 안 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우리들. 이런 모습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코 평생 진정한 여행자가 될 수 없지 않을까.
참고로 태종대오션플라잉테마파크는태종대 전망대에서 3~4km(자차 기준)정도 떨어진 곳에있다.태종대 전망대는또 다른풍경을 보여줄 지도모르니 한 번 가보시길!
태종대 오션플라잉테마파크 전망 카페에서 바라본 남해, 카페에서는 주기적으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탁 트인 바다를 끼고 해안가를 돌다 보면 파스텔톤의 페인트칠을 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자리한 해안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영도에 위치한 '흰여울문화마을'이다.
부산에서 가장 잘 알려진 문화마을로는 감천문화마을이 있는데 그곳은 바다와 근접해 있지 않다. 반면흰여울문화마을은 바로 해안가에 자리해 부산의 향기를 좀 더느낄 수 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물론 감천문화마을과 같이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큰 소음을 내는 건 매너가 아니다. 다만 차이점은 해안가라 파도 소리가 관광객들의 말소리조차 은은하게 만들어준다. 거리거리에는작은 음식점과 카페, 책방, 셀프사진관(최근 유행한 듯 보인다)이 문화의 주를 이룬다.
마을과 해안 산책로를 둘러보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충분하다.출출하거나 목이 마르다면 근처 음식점과 카페에서 허기를 채우고, 간단한 기념품을 구경하기에도 적당하다.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산의 향기를남기기 위해 물빛이 잘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앞 테이블에는 한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다.
글을 쓰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커플은 한 동안 설레는 분위기로일상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얼마 후 잔잔한 바다에폭풍이 인듯둘 사이에 파도가 쳤다.
벼랑 끝에 친 파도는 그들을 침묵 속으로 데려갔다. 상황은 이렇다. 남자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가 서운함을 표현했지만, 남자는 일이 바빠서 그런 걸 어떡하냐고 도리어 여자를 다그쳤다. 문제는 뭐고 누구의 잘못일까. 아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적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렇게 적고 있다.
젊은 커플이 날카로운 한숨을 남긴 채 사라지고 앞에는 또 다른 커플들이자리를 매웠다. 한 학생 커플은 말없이 조용히 각자 스마트폰을 본채 사진만 찍었고, 다른 한 중년의 커플은 다음 일정을 얘기하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해질녘 한층 강해진 노을이 바다에 입을 맞췄다.부산의 느낌을 노트 한 면에 기록한 후 열차 시간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사담이지만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여행기가 충분하다고 느끼진못한다. 하지만 책상 앞에서 일어나야 한다. 다음일정을 위해서...
아쉬울 때 떠나야 한다는 말은 매일이 아쉬운 내겐사치가 아닌가. 다음 여행은 부산스럽지 않게 머물 수 있기를. 부산아 잘 있그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