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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혁 Jan 17. 2024

트릭

13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신경 쓰였던 기철은 유리에 비치는 형상들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타운하우스 건물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사람 중 하나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주세요. 경찰입니다. 아무도 없어요?"


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아니, 여기는 사람 없는 집들이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요."

"다른 집도 가봅시다."


유리창 밖에서 아른거렸던 형상들이 사라졌다. 방 안에 있던 기철이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오자, 결박된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 모습이 문틈에서 그를 따랐다. 기철 거실에서 문을 살피고 있을 때 뭔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예민해진 기철 집안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죽은 것으로 보이는 집주인 부부를 확인한 기철은, 욕실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게 미심쩍었는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면 굳이 가릴 필요 없었을 샤워커튼이 길게 가려져 있었다. 커튼 뒤가 의심스러웠던 기철이 조심스럽게 샤워커튼을 한쪽으로 제쳤지만, 커튼 뒤에아무도 없었다. 꺼림칙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날아온 뭔가에 맞은 기철이 샤워커튼을 잡고 뒤로 넘어갔다. 욕실엔 커튼 고리가 사방으로 튀었고, 플라스틱 도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숨어있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공격. 그가 누군 알 수 없었지만, 경찰일 거라고 예상했던 기철은 그를 밀치며, 현관문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뿔싸, 목덜미를 잡힌 기철이 힘을 썼지만, 그 남자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기철이 품에 숨기고 있던 흉기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철은 목덜미를 놓친 정체 모를 남자와 정면으로 대치 되었다.

그 남자는 태우였다. 태우는 기철을 잡기 위해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태우는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기철은 언제든 상대방의 허점을 찌를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이 둘의 모습은 죽음을 각오한 천적 같았다. 태우가 경계하던 손을 내리고 빈틈을 보이자 순간, 노출된 허점으로 날카로운 비수가 파고들었다.


"잡았다."


기철은 미소를 보이며, 태우에게 말했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우의 엘보우 타격이 기철의 턱에 적중했고, 기철은 무너지는 듯 쓰러졌다. 태우는 옆구리에 비수가 박힌 채로 기철에게 분노를 퍼붓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테이저건을 앞세우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강형사였다.


"그만!"


태우는 분노를 참지 못해고, 쓰러뜨린 천적의 뼈라도 씹어 먹어버릴 것처럼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자칫 기철이 죽게 되어 모든 것을 망치게 될까 봐 강형사는 테이저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연속적인 스파크 소리에 몸이 굳어진 태우 으로 쓰러졌다.




기철이 눈을 떴다. 밝은 조명 빛 때문에 눈이 부셨던 기철은 눈을 가리려 손을 들었으나,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인데, 영문을 몰랐던 기철이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치료받은 흔적들이 보였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강 유조 형사입니다. 정 기철 씨 맞으시죠? 살인 사건 피의자로 구금된 상태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면 구치소로 이감될 예정이니까.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지내세요."

"내가 누굴 죽였습니까? 오히려 맞아서 다친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판사 앞에서 따져보시죠."

"날 때린 새끼 어디 갔어?"

"폭행현행범으로 조사 중입니다. 그것도 판사 앞에서 따져보시죠."


의사 가운을 입은 서하박사가 이들의 대화를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18년 만이었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인간을 마주하는 것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잊을 수 없었던 그 얼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은 악인! 긴장감에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이겨내야 해!]


문을 열고 의사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이 환자 분은 안정이 필요합니다. 조사는 나중에 다시 하시죠."


의사가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손이 떨리는 걸 본 강형사가 말을 걸었다.


"그건 뭡니까?"

"봉합한 상처가 덧날 수도 있어서 진통, 소염 관련 약물을 투여하는 거예요.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하니, 이제 나가 주세요."

"정 기철 씨 경찰이 경계근무 중이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은 버려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강형사가 나간 병실 문 사이로 경계를 서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벽에 보이는 스위치를 누르면, 도움 주실 분이 오실 겁니다. 필요한 것은 그분께 말하시면 되고,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병실 조명은 낮추겠습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죄송합니다. 치료받는 동안은 비공개라서요."


병실 안 조명을 낮춘 의사가 밖으로 나가자, 참을 수 없이 눈꺼풀이 무거워진 기철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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